"경쟁사 웹사이트 무단 크롤링은 데이터베이스권 침해"

대법원, 잡코리아-사람인HR 분쟁에 원고 승소 판결

인터넷입력 :2017/09/27 18:25    수정: 2017/09/28 09:05

손경호 기자

경쟁사 웹사이트 콘텐츠를 무단으로 긁어와 자신의 영업에 사용하는 행위가 데이터베이스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27일 온라인 채용정보제공 사업자 사람인HR(피고)이 잡코리아(원고)를 상대로 제기한 '웹사이트 HTML 소스코드 무단 복제 등 금지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했다.

이에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4월 원고인 잡코리아 승소 판결을 했다.

그러자 사람인HR은 서울고법 판단에 불복해 법무법인 세종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사람인HR측은 상고심에서 "원심이 조정조항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위반하고 관련 법리를 오해했다"고 항변했으며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인정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상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 각 호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아니하거나 제3항 각 호에 해당한다고 인정된다"며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잡코리아-사람인HR, 9년 간 법정공방

두 회사 간 법정 다툼은 9년 전부터 시작했다. 사람인HR이 2008년 잡코리아에 등록된 기업 채용공고를 무단 크롤링해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사람인은 채용공고 무단 복제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2010년 잡코리아는 사람인HR을 상대로 법원에 채용정보 복제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2011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사람인HR이 잡코리아의 채용정보를 무단으로 게재하지 말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강제조정을 통해 사람인HR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이후에도 사람인HR은 검색봇을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채용정보를 무단 복제해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이에 잡코리아는 법무법인 민후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사람인HR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람인HR은 법무법인 광장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공방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법무법인 민후는 사람인HR이 채용정보를 지속적으로 무단수집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점, 몰래 크롤링을 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가상사설망(VPN)을 사용한 점 등을 밝혔다. 이를 근거로 "사람인HR의 행위가 단순한 조정조서 위반을 넘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재판장 김기영 부장판사)는 사람인HR에 채용정보 396건을 폐기하고 잡코리아에 1건당 50만원씩 총 1억9천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고, 사람인HR의 행위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사람인HR은 1심 판결에 불복해 대리인을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교체하고 항소했다.

■서울고등법원-대법원 "무단 크롤링은 데이터베이스권 침해"

항소심에서 법무법인 민후는 데이터베이스권 침해를 새로 추가하는 방법으로 항소에 대응했다.

잡코리아 웹사이트는 저작권법상 데이터베이스에 해당하고, 잡코리아는 그 웹사이트의 제작이나 그 소재(채용정보)의 갱신/검증 또는 보충에 인적 또는 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한 자이므로 잡코리아 웹사이트에 대해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데이터베이스권 침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데이터베이스에 해당하는 원고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위해 인적 또는 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했고 그 소재의 갱신/검증 또는 보충을 위하여도 인적 또는 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한 자로서 원고 사이트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에 해당한다"며 "피고의 이 사건 게재행위에 의해 저작권법 제93조 제2항, 제1항에서 정하고 있는 원고의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따라서 피고인 사람인HR은 잡코리아 웹사이트의 채용정보들을 모두 폐기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조정조서 위반으로 인한 간접강제금 2억원과 데이터베이스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금 2억5천만원을 합해 총 4억5천만원을 잡코리아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사람인HR은 또 다시 소송대리인을 변경하며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끝났다.

관련기사

이 사건은 사용자가 주로 작성하는 콘텐츠를 소재로 하는 데이터베이스에 대해서도 웹사이트 운영자의 데이터베이스 제작자 지위를 인정하고, 이를 무단 복제/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데이터베이스권 침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소송을 담당한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사용자제작콘텐츠 사이트의 성격을 일부 가지는 웹사이트 운영자에게 저작권법상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데이터베이스권을 통한 법적 보호를 인정한 사례"라며 "경쟁사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크롤링 한 다음 이를 자신의 사업기회로 유용한 행위가 저작권법 위반임을 인정한 판시로 크롤링에 대한 법적 판단의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