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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를 품은 유통으로 ‘화장품의 넷플릭스’ 꿈꾸죠

이경진 기자
입력 : 
2016-08-09 15:13:42
수정 : 
2016-08-09 15: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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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스타트업 (11) 미미박스
“미미박스는 유통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해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제품 개발까지 연결하는 회사입니다.”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33)는 지난달 27일 매일경제와 만나 자신의 회사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그와의 만남은 두번째. 지난해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을 비롯한 유명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330억 원을 투자받았던 걸 계기로 처음 만났다. 1년 좀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 미미박스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우선 서울 역삼동에 있던 사무실이 경기도 판교로 이전했다. 직원수 550명. 미국과 중국 2곳 뿐이었던 해외지사는 싱가포르, 대만을 비롯해 6곳으로 늘어났다. 국내를 포함해 전세계 미미박스 회원은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정도면 스타트업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렛츠스타트업에 소개되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회사가 아닐까. 이런 물음에 하 대표는 “미미박스는 아직 스타트업”이라고 했다.

미미박스는 그동안 대박을 터뜨린 초기 사업을 과감히 정리했다. 이 회사는 2012년 화장품 샘플 정기배송(서브스크리션) 서비스를 했고 1년만에 매출 10억 원을 달성했다. 당시 미미박스 고객들은 매달 1만6500원을 내고 최대 10만 원어치 화장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해 받았다. 화장품 회사에서 무료로 화장품을 협찬받아 배송한 미미박스는 화장품 회사를 위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도 하고 100여쪽에 육박하는 소비자 보고서를 보내면서 수익을 올렸다.

처음엔 오프라인 화장품 매장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 대표도 “명동에 수많은 화장품 매장이 하나 더 생기는 것에 불과할 것”이라며 온라인·모바일에만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6월 서울 강남역에 미미박스 이름을 내건 오프라인 매장이 생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 대표는 “창업 때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열자는 의견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운을 뗐다. 정기배송 회원이 늘 수록 “이 많은 고객을 샘플 정도로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단다.

하 대표는 “300만명 규모 고객 데이터를 갖고 있다면 우리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고객 트렌드 변화보다 빠르게 움직이려면 사업에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미미박스는 모바일을 통한 전자상거래 뿐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체 브랜드 제품을 선보이면서 2.0 시대를 열게 됐다.

지난 6일 홍대 인근에 2호점을 오픈했다. 신촌 3호점은 다음달초 문을 열 예정이다. 백발 노신사가 컴퓨터를 배우는 애플의 ‘지니어스 바’에서 매장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젊은 여성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립스틱을 발라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단다.

언뜻 보면 무리한 확장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를 채울 만한 화장품 라인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대표는 “지난 2014년 자체 브랜드 제품을 시범적으로 선보인 이래 매주 수요일마다 신제품을 내놨다”며 “700개 내놓은 제품 중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지만 새 제품을 낼 때마다 디자인과 품질이 빠르게 개선된다”고 말했다. 현재 미미박스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아임미미, 포니이펙트, 누니, 본비반트 등 자체 브랜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스킨케어부터 색조까지 라인업을 확장해가는 추세다.

하 대표는 “얼마나 많이 판매하는지 측정하는 것보다 소비자들이 얼마나 머무르고 다시 방문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고객마다 고유 번호가 있어 재방문 고객은 자동 인식할 수 있게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최근 미미박스는 화장품 유통업계 ‘넷플릭스’가 되기 위한 추천 서비스를 국내에서 시작했다. 이 회사가 가진 데이터는 1200개 화장품 브랜드, 이를 즐기는 300만명 이상 고객 데이터가 있다.

표면적으로 미미박스는 화장품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회사다. 하지만 알고보면 엔지니어 비중이 35%(해외 지사의 경우 절반 가까이 된다)나 될 만큼 기술 중심적 회사다. 사무실을 판교로 이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 대표는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IT기업이 밀집해 있고 코스맥스, 코스메카와 같은 화장품 OEM 기업도 많다”며 “유통과 IT를 융합한 미미박스와 같은 회사에겐 판교가 최적지였다”고 밝혔다.

회사가 꽤 커졌지만 그는 달라진 게 별로 없다고 했다. 평일이면 아침 7시에 출근해 내부 미팅을 수차례 가진다. 2007년 뉴욕 파슨스대학에 입학한 뒤 패션 브랜드 톰 포드 인턴을 거쳐 국내 소셜커머스 티켓몬스터 뷰티 팀장으로 오게 됐을 때만 해도 이런 삶을 살 게 될지 몰랐다. 그러다 아주 우연하게 서브스크립션 사업이 떠올라 통장에 있던 600만 원으로 사무실을 얻었다. 창립 멤버 4인방 자본금 3500만 원과 치열한 회의 끝에 나온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미미박스 연간 매출 성장률은 300%에 달한다.

하 대표는 “연내 판교에 연구개발센터도 열 계획”이라며 “2018년까지 12개국에 진출해 더 많은 소비자와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다. 그는 “테슬라나 애플 창업자라면 미미박스를 어떻게 경영했을지 생각해본다”며 “화장품 이상의 가치를 주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미미박스는 여전히 스타트업”이라고 하 대표는 주장하지만, 이 회사는 이제 연간 수백억원대 매출을 일으키는 대형 벤처로 성장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쨌든 이번 ‘미미박스’는 렛츠스타트업 번외 편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경진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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