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근무 논란 위메이드, 이번엔 스타트업 투자 취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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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AI벤처 100억 투자 약속… 해당업체 직원 모으며 창업 준비
4월달 이메일 한통으로 투자 철회… 벤처업계 “스타트업 날개 꺾는 짓”

강도 높은 근무와 야근을 뜻하는 ‘크런치(crunch) 모드’를 직원들에게 강요해 논란을 빚은 게임업체 위메이드가 이번에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에 100억 원 상당의 투자를 약속해놓고 하루아침에 뒤집어 구설에 올랐다. 벤처업계에서는 “스타트업의 날개를 꺾는 짓”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8일 위메이드와 AI 스타트업 보이저엑스에 따르면 위메이드는 지난달 25일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에게 ‘투자하지 않음 결정’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은 두 회사가 1월부터 이어오던 100억 원가량의 투자 관련 논의를 백지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 대표는 네오위즈의 인터넷 채팅 서비스 ‘세이클럽’ 개발에 참여하고 이후 포털 사이트 ‘첫눈’을 창업한 바 있다. 첫눈이 네이버에 인수된 후 일본에서 ‘라인 카메라’와 ‘B612’ 등 인기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남 대표는 1월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와 만난 뒤 위메이드 측으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았다. 3월 중순에는 ‘보이저엑스’를 창업하고 사무실 임대 계약, 컴퓨터 등 기자재 구입 등 사업 준비도 진행했다. 남 대표는 투자가 문제없이 이뤄질지 여러 번 확인했고 그때마다 위메이드 측으로부터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업 준비 과정에서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어갔고 남 대표를 비롯해 창업에 뜻을 모은 지인들은 카카오와 라인 등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두 회사는 지난달 24일까지도 서로 투자 관련 회의와 통화를 하고 보이저엑스가 사무실 보증금 등으로 쓸 10억 원을 위메이드로부터 대출하기 위한 서류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달 25일 위메이드가 이메일을 통해 “약속했던 투자를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알려왔다. 위메이드는 이메일을 통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보이저엑스가 탁월한 부분은 사실”이라고 하면서도 “사업을 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 최종적인 판단”이라고 밝혔다.

남 대표는 “투자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들인 돈도 문제지만 나를 믿고 따라온 멤버들에 대한 미안함이 정말 컸다”며 “후배 창업가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이저엑스는 현재 사업을 이어갈 다른 방안을 찾고 있다.

위메이드 측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남 대표에게 보낸 이메일 외에 추가로 할 말은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보이저엑스가 투자금을 받고 난 후 사업을 진행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스타트업으로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업계에서 사업에 속도를 내는 게 중요한 데다 거액을 투자받을 곳이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투자 기회가 생기면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 벤처업계 종사자는 “위메이드뿐만 아니라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한 독소조항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일과 삶이 잘 분리되지 않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위메이드#스타트업#ai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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