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회원 3억 명을 보유한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은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 북스’를 열었다. 미국 서점 1위 반스앤드노블과 보더스가 매출 부진으로 잇따라 문을 닫은 장소다. 돈을 벌겠다는 의도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세계에서 제일 땅값 비싼 곳에 문을 열고서도 아마존 북스는 고객에게 “여기서는 구경만 하고 온라인에서 주문하라”고 권장한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역으로 오프라인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수집하는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사용자 경험과 행동, 물리 공간에 대한 데이터들은 AI 기술 개발과 마케팅의 핵심 재료가 된다. 이들 기업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데도 의미가 있다.

네이버가 최근 확대 개편한 쇼핑 플랫폼 ‘스토어팜’은 온라인 창업자들에게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기존 오픈마켓이 받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숙 네이버 이사는 “지난해 10만 명 선이었던 스토어팜 판매자가 올해는 2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네이버 입장에서는 유지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역마진’ 플랫폼이지만 소상공인과 고객 데이터를 모으는 데 반드시 필요한 플랫폼”이라고 설명한다.

오프라인에 머물고 있는 판매자와 고객들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이고, 이들의 구매 정보·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다.

카카오는 ‘카카오택시’와 ‘카카오맵’ 등 O2O(온라인에서 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소비자 행동을 분석하고 교통과 관련한 데이터를 확보한다. 조만간 이를 바탕으로 ‘카카오 교통 O2O 백서’를 낼 예정이다.

구글이 최근 발표한 온라인 광고 툴 ‘구글 어트리뷰션’은 온라인 사용자들의 오프라인 구매 패턴을 파악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사용자들이 인터넷에서 제품 광고를 본 다음 바로 주문하지 않고 실제 매장을 방문해 해당 제품을 구입하는지까지도 알 수 있다. 구글맵, 스마트폰 위치 정보와 신용카드 결제 내역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구글이 지난달 선보인 AI 카메라 앱 ‘구글렌즈’도 비슷하다. 구글렌즈는 사용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식당을 비추면 간판을 인식해 식당 정보와 메뉴를 제공한다. 구글은 이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사용자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 자주 가는 동선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IT 기업들이 오프라인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는 e커머스(전자상거래)와 오프라인 거래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도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커머스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 회장도 지난해 “순수한 전자상거래의 시대는 곧 끝날 수밖에 없다”며 “온·오프라인 물류가 결합한 신소매 유통 모델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사생활 및 개인정보 침해 논란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구글이 ‘구글 어트리뷰션’을 내놓자 미국 소비자단체들은 “신용카드 결제 기록과 구매자 정보가 노출된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오프라인 데이터 수집을 이유 삼아 ‘골목 상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아마존 북스는 2015년에 처음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공룡기업이 지역 상권까지 침투하려고 한다”는 비판 때문에 확장 속도를 늦추고 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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