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Notch]㉓ 불붙은 '망 중립성' 논란.. '혁신의 보루인가 낡은 장벽인가'

방성수 기자 입력 2017. 5.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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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디지털 융합과 기술 변화에 맞는 원칙 수정이 필요하다” vs “망 중립성 원칙(Net Neutrality Rule)을 폐기하면 인터넷의 자유와 혁신은 질식사할 것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ion)가 5월 18일(현지시각)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 재분류를 골자로 하는 아짓 파이(Ajit V. Pai·44) 위원장의 제안을 표결에 붙여 2대 1로 통과시켰다. 공화당 몫인 아짓 파이 위원장과 마이클 오라일리 위원이 찬성표를 던졌고 민주당 출신인 미뇽 크리번 위원은 반대했다. 민주당 몫인 제시카 로젠 워슬의 임기가 만료됐고 톰 휠러 전 위원장이 사임, 현재 FCC 위원은 3명(정족수 5명)이다. 파이 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유무선 사업자에 대한 현재 분류가 부당하다는 내용을 담은 57쪽 분량의 팩트 시트(fact sheet)를 공개했고 이날 표결로 FCC 공식 입장이 됐다.

미 연방통신위원회 아짓 파이 위원장이 망 중립성 원칙 수정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사진=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망 중립성 원칙 수정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 “망 중립성 강화” 오바마 정책 수정 두고 논란FCC의 표결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진보 성향의 IT전문 미디어들은 파이 위원장과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대한 공격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분노한 진보 성향 네티즌들의 감정 섞인 댓글들이 쏟아지고 있다.논란의 핵심은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을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 2’ 기업으로 분류, 정부의 강력한 규제 아래 둔 2015년 오바마 행정부 결정의 폐지 여부다.오바마 행정부는 망 중립성 원칙을 강화한 ‘오픈 인터넷 규칙(Open Internet Order)’을 추진하면서 유선 인터넷 사업자 뿐 아니라 무선 사업자들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이에 따라 무선통신 사업자들도 ‘유니버셜 캐리어(Universal Carrier·사업자는 고객을 차별할 수 없다는 원칙)’의무를 부과받았다.당시 FCC 위원이던 파이 현 위원장은 “인터넷의 중심은 연방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인터넷 사업자 규제는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반대했다. 버라이즌 등 무선통신 사업자들은 FCC 결정에 불복, 소송을 냈다.‘망 중립성 원칙’은 통신사업자가 인터넷 콘텐츠를 차별 없이, 중립적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1930년대 연방 정부가 “열차, 버스 등 운송 회사는 승객의 신장, 몸무게 등을 이유로 차별적인 요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유니버설 캐리어’ 원칙을 확립한 이래 육상·해상·항공 산업 뿐 아니라 전화, 인터넷 등 통신망 산업 규제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았다.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미국의 유무선 통신 사업자들은 인터넷 이용, 앱 이용을 차단하거나 속도를 줄이거나 추가 요금을 청구하지 못한다. 엄청난 트래픽을 유발하는 유튜브, 페이스북과 일반 이용자들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최근 페이스북이 별도 이용 요금을 내라는 국내 통신사의 요청을 거부하고 서버를 해외로 옮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무선통신 사업자들도 망 중심성 원칙의 규제를 받는 기업으로 분류했다. 사진은 톰 휠러 당시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사진=블룸버그

◆ 파이 위원장, “규제 잡초 뽑아야 혁신… 산업 융합·5G 대비 규제 정비” 소신

“망 중립성 원칙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망 중립성 원칙 주변에 무성히 자란 규제의 잡초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디지털 혁신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미국은 더 성장할 수 없다.”

파이 위원장은 ‘정부 규제보다 자유 경쟁 시장이 소비자들에게 더 이익’이라는 소신을 가진 규제 철폐론자다.

2012년 미국 하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산업의 역동적인 변화에 부응해 정부 역할도 변해야 한다. 경제성장, 정보통신 분야 일자리 창출, 인터넷 이용자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더 낮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과 코드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파이 위원장은 “통신 인프라 투자를 막는 규제를 제거해서 모바일 브로드밴드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5G 시대를 맞아 미국의 통신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빈사 상태의 통신 사업자들을 몰아 세우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망 중립성 원칙 적용 여부에 따라 통신사와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다./사진=각사 홈페이지, 그래픽=방성수 기자

파이 위원장은 방송과 통신 산업의 융합 시대를 맞아 구글과 아마존 등 인터넷 사업자들의 케이블TV 시장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 누구에게 이익?… 통신사, 인터넷 거대 기업,스타트업, 소비자 셈법 다 달라

70년도 더 된 해묵은 원칙이 디지털 시대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이유는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이권이 왔다갔다하는 것은 물론 디지털 경제로의 이전을 목표로 하는 미국, 나아가 세계 각국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버라이즌 등 미국의 통신 사업자들은 “통신 기업들은 매년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통신망을 설치하고 관리한다. 하지만 정작 과실은 돈 한푼 안 낸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이 독식한다”며 통신 기업들이 ‘돈은 못벌고 네트워크만 까는 기업(Dump Pipe)’이 되고 있다고 불평한다.

‘망 중립성 원칙 아래 재주(통신망 투자)는 곰(통신사)이 넘고 돈은 떼놈(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버는 구조가 설비 투자를 막는다’는 논리다.

2015년 망 중립성 원칙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블룸버그

실제 미국 저녁 골든 타임(오후 8시~10시) 인터넷 트래픽의 60%는 넷플릭스, 훌루 등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차지하고 인터넷 광고 대부분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6대 인터넷 사업자가 독식하고 있다.

규제에서 자유로운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서비스 기업은 매년 기록적인 이익을 올리지만 규제를 받는 통신사들은 이익 추락으로 고생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은 “통신 사업자들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이미 요금을 받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게 추가 비용을 내라는 주장은 이중으로 요금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혁신을 질식시킬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더 버지 등 진보 미디어들은 “망 중립성 원칙 덕분에 과거 스타트업 기업이던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 기업들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망 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 통신사들이 인터넷 트래픽 정도에 따라 요금을 차별 부과할 것이고, 이는 신생 스타트업 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재앙”이라고 지적한다.

일반 이용자들은 “안 그래도 몇 몇 도시를 제외한 미국의 인터넷 속도가 굼벵이처럼 느린데 망 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 통신사들이 일반 소비자들은 외면하고 돈 되는 사업만 골라 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한다.

망 중립성 논란에 따라 통신사들의 미디어 진출 등 반독점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사진은 AT&T가 작년 인수한 타임워너 소속 미디어들./그래픽=방성수 기자

◆ 통신사의 방송 진출 관련 반독점법 논란, 5G 기술 특성 등 변수 많아 FCC는 오는 8월까지 일반인들의 의견을 접수하고 연말쯤 새 규정 도입을 위한 최종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다. 현재 공석인 두 명의 FCC 위원 선임이 끝나도 공화당 몫이 3대 2로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망 중립성 원칙을 수정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입법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최종적으로 작동하려면 넘어야할 장벽이 아직 많다.망 중립성 원칙을 둘러싼 논란에 잠시 가려져 있지만 최근 몇 년간 유행처럼 이뤄진 통신사들의 미디어 산업 진출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컴캐스트는 2011년 NBC유니버셜을 인수했고 버라이즌은 2015년 아메리칸 온 라인(AOL)을 인수했다. AT&T도 작년 850억달러를 들여 타임워너를 인수했다. 컴캐스트와 버라이즌의 콘텐츠 기업 인수에 대해 오바마 정부는 망 중립성 원칙 준수를 조건으로 허가했는데 망 중립성 원칙에 수정이 가해질 경우 다른 콘텐츠 기업들이 반독점법 위반 등으로 통신기업들의 미디어 산업 진출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당장 작년 타임워너를 인수한 AT&T의 인수합병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 조차 “소수에 의한 과도한 독점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5G 통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모든 이용자를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는 망 중립성 원칙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5G 통신 기술은 물리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를 통해 논리적으로 분리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슬라이싱(Network Slicing) 기술이 핵심이다.통신사들이 가상 네트워크별로 차등 요금을 부과하거나 제로 레이팅(Zero Rating·이용자의 데이터 요금을 인터넷 사업자가 지불하는 요금제)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현재 망 중립성 원칙 아래에서 이런 서비스는 불가능하다.20세기초 미국의 자유방임 경제는 독점 기업들의 출현을 낳았고 1929년 대공황으로 파국적인 종말을 맞았다.1970년대 독점 기업을 잡겠다며 도입한 각종 규제는 기업들의 혁신을 가로 막아 미국의 산업과 경제를 질식시키고 소비자들을 궁핍하게 했다.규제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니라고 역사는 증언한다. 망 중립성을 둘러싼 논란은 디지털 경제로의 이행을 추진하는 디지털 초강대국 미국이 직면한 고민과 난관을 상징한다.

파이 위원장은?실리콘밸리 등 “나이스 가이” 평가… “소비자 이익 우선” 규제 철폐론자 파이 위원장은 1973년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서 인도 출신 의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도계 미국인 가운데 최고위직에 오른 인사다.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1997년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땄다. 법무부, 버라이즌, 연방통신위원회. 로펌(제너 앤드 블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12년 5월 오바마 행정부에서 공화당 몫으로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에 임명됐고 올해 1월 위원장에 올랐다.1934년 출범한 연방통신위원회는 유·무선 통신, 방송 관련 각종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다.

클린턴 정부에서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리드 헌트(Reed Hundt)는 “파이 위원장은 매우 똑똑하고, 통신위원회라는 정부 기관과 관련 법규를 잘 아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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