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꿈꾸는 1000여개 스타트업… 佛, 기술-정보 전폭지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 현장 르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6월 29일,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가 화려하게 문을 연 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선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프랑스어로 인사하기 전 영어와 스페인어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프랑스는 프랑스어만 쓴다’는 자존심 대신에 전 세계 스타트업의 허브가 되겠다는 야망을 선택한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센터 입주를 희망하는 스타트업 회사들은 오직 영어로만 지원서를 쓸 수 있다. 그 덕분에 스테이션F가 운영하는 파운더스(Founders) 프로그램에 네팔과 자메이카를 비롯해 전 세계 50개국에서 2300개 기업이 지원했다. 최종 선정된 기업 200개 중 3분의 1이 외국 기업이다.

스테이션F의 책임자도 상징적으로 32세 이란계 미국인 여성 벤처기업가로 정했다. 책임자 록산 바르자는 “국제적인 재능이 부족하다는 게 프랑스의 약점”이라며 “스테이션F는 프렌치 프로젝트가 아니라 코즈모폴리턴 센터를 꿈꾼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개막식 날 사회를 보면서 “No male, No white, No MBA”를 외쳤다. 그동안 기업가의 기득권 세력이던 남성, 백인, 경영학석사(MBA) 출신을 깨자는 의지였다. 실제 이곳에 입주한 기업 창업가의 40%가 여성이다.

지난달 29일 방문한 프랑스 변화의 상징 스테이션F는 파리 중심부인 13구 센강 주변 1920년대 운영되던 철도차량기지 위치에 지어졌다. 3만4000m²에 이르는 엄청난 면적에 에펠탑이 누워있는 것과 같은 길이인 310m의 긴 유리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 안에서 1000여 개의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꿈을 좇고 있다.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의 인테리어는 자유롭게 오픈된 공간과 밀폐된 오피스 공간을 적절히 배분하고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인 이곳에는 1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의 인테리어는 자유롭게 오픈된 공간과 밀폐된 오피스 공간을 적절히 배분하고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인 이곳에는 1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컨테이너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미팅룸과 탁 트인 복도, 그 사이에 놓인 컬러풀하고 편안한 소파와 라운드 테이블이 시선을 끌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입주를 희망하는 스타트업 기업 수백 곳을 면담해 선호하는 업무 환경을 파악한 뒤 꾸몄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 회사들은 오픈 공간을, 설립한 지 3년 이상 지난 중견 스타트업 기업은 독립된 오피스를 바랐다고 스테이션F 관계자는 설명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서로 부족한 정보를 나누고 싶어 한 반면에 일정 궤도에 오른 기업들은 인재와 노하우 노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레고 인테리어를 배치한 공간도 있고 곳곳에 게임기들도 놓여 있었다.

프랑스 정부에서 스타트업 지원을 담당하는 ‘프렌치테크팀’의 로랑 부다르 씨는 “스테이션F는 스타트업들의 우산 역할을 할 역량이 있는 단체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생태계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아마존, 한국의 네이버 등 성공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들을 이끌고, 프렌치테크팀이 지원하며 프랑스 경영 분야 최고 그랑제콜 고등상업학교(HEC)가 함께 연구를 하도록 하는 등 24개 파트너가 이곳에 입주해 있다.

파운더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 기업 ‘엔조’의 다이세 미우라 대표는 “입주한 후 두 달 동안 너무 행복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엔조는 배관, 열쇠, 전기 등 갑자기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장 싼 가격으로 2시간 내에 출동할 수 있도록 상점과 소비자들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비싼 사무실 임차료 때문에 그동안 샤를드골 공항 근처 외곽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파리 중심부에 월 195유로(약 26만 원)의 싼 임차료로 머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그는 파운더스 프로그램 중 가장 도움이 되는 제도로 ‘길드’를 꼽았다. 온라인 게임 유저들의 모임을 뜻하는 길드 제도는 파운더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 5∼7개를 하나로 묶어 매달 서로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나누는 제도다. 미우라 대표는 “동종 업계를 묶을 경우 경쟁심 때문에 정보 공유에 제약이 생겨 전혀 다른 기업끼리 묶는데도 스타트업들만의 애로를 서로 나누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달고 시장은 스테이션F 개막식에서 “파리는 이제 시간이 멈춘 박물관 같은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실제 그동안 디지털 분야에서 뒤져 있던 프랑스 경제는 최근 불어닥친 테크 붐, 스타트업 붐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 캐피털리스트는 프랑스 스타트업 기업 590개에 8억7400만 유로(약 1조1799억 원)를 투자했다. 유럽 내 벤처 투자 1위국인 영국의 520개보다 많은 기업이 투자를 받았다.

100억 유로(약 13조5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스타트업 혁신 펀드를 준비 중인 마크롱 대통령은 “전 세계 가장 매력적이고 창조적인 스타트업 기업들의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공언하고 나섰다. 해외 창업자를 유치하기 위해 ‘재능 비자’를 도입해 비자와 생활에 특혜를 주고, 국가 차원의 창업 지원금을 확대하고 관련 규제 철폐도 진행 중이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를 유니콘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유니콘은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을 부르는 말로 전설의 동물 유니콘처럼 희귀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프랑스는 초기 스타트업 기업 지원뿐 아니라 초기 스타트업에서 돈을 버는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2단계 업그레이드 방안을 마련 중이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스테이션f#스타트업#캠퍼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