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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LEADER 2030] 김주윤 닷 대표 

시각 장애인용 스마트워치로 글로벌 진출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김성룡 기자
수백만원이 넘는 시각 장애인용 점자 기기 시장에 30만원대 스마트워치를 내놓은 스타트업 닷이 주목을 받고 있다. 20대 창업가 김주윤 닷 대표는 공익성과 사업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주윤 대표는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와 창업했다. 시각장애인용 기기 시장에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세계 시각 장애인은 2억8500만 명이나 된다. 이들 중 95%는 점자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생계유지를 위해 점자 교육을 포기한다. 점자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세상의 소식과 정보를 알려면 전자 점자리더기가 필요하지만, 이 기기의 보급률은 5%에 불과하다. 200만~300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 때문이다. 점자 기기가 필요한 이들은 많지만, 가격을 낮추거나 편리성을 높이는 혁신적인 움직임은 별로 없었다. 이 시장에 30만원에 불과한 세계 첫 점자 스마트워치 ‘닷 워치’를 내놓아 업계를 놀라게 한 이가 있다. 김주윤(27) 닷 대표가 주인공이다.

무게 33g에 불과한 닷 워치는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해 사용한다.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이나 문자 같은 알림이나 시간을 닷 워치 전면에 있는 30개의 점자가 각각 돌출하면서 내용을 알려주는 식이다. 스톱워치 기능도 사용할 수 있다. 나중에는 통신 기능을 탑재해 문자를 직접 닷 워치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닷 워치의 기능을 현실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자석을 이용해 30개의 점자를 돌출시키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가산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닷 워치를 가능하게 한 핵심 기술이 액추에이터(Actuator)다. 2년 동안 개발해서 완성했고, 특허만 50여 개가 넘는다”고 강조했다.

닷 워치는 한국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유명하다. 인디고고·킥스타터 같은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도 세계 시장에 진출한 한국의 스타트업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닷 워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고도 영국·스웨덴·네덜란드·미국·덴마크 등 15개국에서 15만 대의 선주문을 받았다. 유명 유통업체들은 닷 워치의 유통을 맡겠다고 계약했다.

지난해 3월 김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장애인을 위한 정보통신 박람회 ‘CSUN’에 부스를 마련하고 닷 워치를 선보였다. 세계적인 팝스타이자 시각 장애인인 스티비 원더도 전시장을 개인 비서와 함께 찾았다가 이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바로 선주문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베타테스트가 끝나는 1월 말부터 영국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해외 배송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올해 판매할 제품은 6만여 대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18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외 배송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말부터 한국에서 100명의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베타테스트를 하고 있다. 제품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제품에 문제가 없는지를 미리 살펴보기 위해서다. 수도권은 물론 멀리 제주에서까지 260명이나 신청했다.

점자 교육 기기‘닷 미니’제3세계 국가에서 관심


신청자들은 대부분 시각 장애인을 둔 가족들이었다. 2년 전 산에서 사고를 당해 시각장애와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초등학생 딸을 둔 대구의 한 아버지부터 유전적으로 점차 시각을 잃어가면서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야 했던 울산의 한 시각 장애인까지 다양한 사연이 접수됐다. 가족의 손을 잡고 지역의 시각 장애인복지관을 찾은 이들은 짧은 설명을 듣고 닷 워치를 받아갔다.

김 대표는 닷 워치를 시작으로 공익적인 제품을 계속 출시할 계획이다. 닷 워치의 기술을 사용한 점자 교육 기기 ‘닷 미니’가 대표적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점자 기기로 가격은 15만원.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제3세계 국가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닷은 한국 국제협력단(KOICA)의 창의적 가치창출 프로그램(CTS)를 통해 제3세계 국가에 진출하고 있다. 케냐 정부는 100만 달러(11억원) 규모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 기기를 보급할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2조원 규모의 지하철 사업에 들어가는 공공시설에 닷의 기술을 사용하는 프로젝트를 맡기기도 했다.

올해 6월에는 수백만원이 넘는 기존 점자 기기를 대체할 수 있는 닷 패드도 선보일 계획이다. 닷 패드는 쉽게 말해 시각 장애인용 태블릿이라고 보면 된다.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고 e메일도 보낼 수 있다. 심지어 SNS도 이용 가능하다. 김 대표는 “칸 국제광고제에서 닷 패드를 시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칸 국제광고제를 택한 이유에 대해 “닷 워치가 지난해 6월 열린 2016 칸 국제 광고제에서 큰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지난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프로덕트 디자인 부문과 이노베이션 부문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세 번 창업했다. 중학생 때 우연히 본 책에서 글로벌 기업가 손정의를 보고 기업가가 되길 꿈꿨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아버지를 졸라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전공은 사회과학이었지만 그가 들은 수업은 창업과 관련된 게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대학에서 만난 친구가 무거운 점자책과 기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정보통신기술(ICT) 시대에 가벼운 점자기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왜 아직도 무거운 기기를 들고 다닐까‘라는 의문을 품었던 것. 시각 장애인과 점자 기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워싱턴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트럭공유경제 서비스 웨건, 유학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 등을 창업했다. 짧은 시간에 매출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이 사업들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손을 털기 일쑤였다. 그는 “일을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로소 닷 워치를 통해 고가의 점자 기기 시장을 혁신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이후로 왜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도 찾았다”고 덧붙였다. 2014년 초 휴학하고 귀국한 그는 그해 6월 닷을 창업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창업 초기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2014년 12월 KBS에서 방영된 ‘황금의 펜타곤’ 시즌2에서 우승을 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이후에도 미래창조 과학부 장관상(2014년 12월), TIPS 선정(2015년 6월), 프랑스 오렌지 팹(Orange Fab) 한국 스타트업 톱 5(2015년 7월), IF 2016 디자인 어워드 수상(2016년 1월) 등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60여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닷 패드 개발을 위해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사업과 공익성에서 모두 성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김성룡 기자

201702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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