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영입하듯.. 실리콘밸리 "한국 토종 OK"

박건형 기자 2017. 8.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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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현지 경력 따지던 IT 대기업들, 인재확보 경쟁에 '입도선매'
年수입 2억원 이상, 인재 우대용 비자 발급, 화상면접으로 "합격"
한국은 이공계 홀대와 의사 선호 강해.. "국내서 클 환경 조성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대학원생인 김유창(27)씨는 내년 2월 박사 학위를 받으면 미국 애플에 입사한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 연구소에서 5개월간 인턴 과정을 마쳤고, 입사가 확정된 상태이다.

김씨의 전공은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반도체 회로 설계. 애플은 모바일 AP 연구에만 연간 수 조 원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술(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문화가 폐쇄적인 애플이 한국 대학원생을 곧바로 데려가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라며 "마치 한국 프로야구의 류현진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곧바로 스카우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최상위권 학생들, 실리콘밸리 1순위로 꼽아

실리콘밸리의 구애(求愛)를 받는 것은 김유창씨뿐만이 아니다. KAIST의 반도체 전공 학생들은 최근 미국 IT 대기업들의 주요 스카우트 타깃이 되고 있다. 3차원 반도체 설계를 연구하는 김정호 교수 연구실은 최근 3년간 석·박사 졸업생 8명이 실리콘밸리 대기업에 스카우트돼 미국으로 떠났다. 대부분 연봉 13만달러(약 1억5000만원) 이상에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별도로 부여받았고, 일반 취업 비자가 아닌 'O-1' 비자를 취득했다. 이 비자는 미국 정부가 과학·예술·스포츠 등의 영역에서 특출난 능력을 가진 경우에만 발급하는 '최고 인재 스카우트용' 비자다. 이 중에는 학부 과정을 항공대·충남대·광운대·경북대 등에서 마치고 KAIST 석·박사과정으로 진학한 학생들도 있다.

김 교수는 "석·박사과정을 이 연구실에서 밟으면서 반도체 기술을 배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2년마다 실리콘밸리에서 논문 발표회를 진행하는데 애플, 테슬라, 인텔, 엔비디아 등에서 회사별로 20~30명씩 와 내용을 듣고 학생들의 눈도장을 찍고 간다"고 말했다.

2013년 이후 미국 IT 대기업이 스카우트한 KAIST 졸업생은 40여 명에 이른다. 반도체 설계를 연구하는 경종민 교수 연구실에서 6명, 컴퓨터 비전 전공인 권인소 교수 연구실에서 3명이 애플과 인텔에 입사했고, 전산학부에서도 10명이 구글·IBM에 취업했다.

전산학부 졸업생인 진태진씨의 경우에는 2015년 학부만 마치고 구글에 입사하기도 했다. 탁월한 프로그래밍 능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박오옥 KAIST 부총장은 "석·박사 졸업생 가운데 상위 5% 이내에 드는 최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수가 되는 것만큼이나 미국 IT 대기업 취업을 최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인재 영입 치열… 재학생까지 입도선매

미국 IT 대기업들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인재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채용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다른 기업 근무 경력이 있거나 미국 내 유명 공대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재를 물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턴십 등을 활용해 대학 재학생까지 입도선매하고 있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 주행차 분야 전공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뽑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채용 절차에서 대면 면접을 생략하고 화상 면접이나 메신저로 대체하는 파격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인재들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 신입 연구원(엔지니어)의 연봉은 12만~15만달러로 한국 대기업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실리콘밸리로 떠나는 국내 이공계 핵심 인재들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국내 IT 인력의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인재 유출이라는 측면에서는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KAIST 전산학부의 한 교수는 "한국에서 여전히 이공계 홀대와 의사 선호 풍토가 팽배한 상황에서 좋은 조건을 제안받은 학생들을 애국심이라는 명목으로 잡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한국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에 대응할 만한 인재 영입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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