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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 모태펀드 예산 2년 연속 삭감-‘창조경제’ 힘빼기 나섰나…투자위축 우려

  • 배준희 기자
  • 입력 : 2016.11.14 16:03:03
모태펀드 예산이 2년 연속 삭감되면서 벤처업계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경기 분당구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개소식에 참석해 창조경제 혁신상품 전시관을 방문한 모습. 왼쪽부터 박 대통령, 황창규 KT 회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모태펀드 예산이 2년 연속 삭감되면서 벤처업계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경기 분당구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개소식에 참석해 창조경제 혁신상품 전시관을 방문한 모습. 왼쪽부터 박 대통령, 황창규 KT 회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최근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는 정책자금인 모태펀드에서 중소기업진흥 전용 예산(중진계정)이 2년 연속 전액 삭감되자 이를 두고 벤처업계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모태펀드는 지난 2005년 모험자본 육성을 명분으로 설립돼 10여년간 벤처 생태계 육성에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특히 업력 3~5년 미만 초기 기업 자금줄에 숨통을 터줘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벤처업계에선 ‘투자절벽이 도래할 것’이란 우려부터 ‘벌써 창조경제 색깔 지우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뒷말까지 여러 해석이 나온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모태펀드의 중소·벤처기업 투자 전용 ‘중진계정’에는 새 예산이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지난해(2016년 예산)에 이어 올해(2017년 예산)까지 2년 연속 전액 삭감이다. 모태펀드는 일종의 ‘펀드 오브 벤처펀드’로 투자 목적에 따라 중진·엔젤·문화·미래·영화·특허·보건·지방·관광·스포츠 등 계정별로 나뉜다. 각 계정별 주무부처가 신규 예산을 마련해 모태펀드에 출자하면 여기에 민간자금을 더해 이를 벤처캐피털에 나눠주는 식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모태펀드에는 중소기업청, 문화체육관광부, 특허청 등 8개 부처가 출자해 현재 총 471개 조합(펀드), 3조8914억원 규모로 운용 중이다. 이 가운데 중진계정(313개)이 갖는 비중이 66.4%로 가장 높다.

▶창업펀드 8할이 모태펀드

기재부 “회수금으로 운영”

성장금융과 자본성격 달라

모태펀드의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모태펀드는 사모펀드기 때문에 수익률 수치를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벤처업계에 따르면 매년 모태펀드가 출자한 펀드를 청산할 때 연평균 6~7%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다. 통상 모태펀드의 자펀드 평균 만기는 벤처업계 특성상 투자부터 회수까지 최소 5~7년가량 걸린다. 수익률은 이 기간을 채우고 청산되는 자펀드만 평균을 낸 것이다. 연환산 6~7%대 수익률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지난해 국민연금기금의 평균수익률은 4.6%였는데 주요 자산군 가운데 그나마 대체투자가 12.2%로 선방한 결과지 국내 주식은 1.3%에 불과했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모태펀드 규모를 줄이려는 당국 방침에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다.

중진계정 소관부처인 중소기업청에서는 “내년 청년창업펀드와 지방펀드 등 출자를 위해 신규 예산을 신청했으나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가 수용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기재부는 크게 2가지를 이유로 든다. 첫째는 최근 2~3년 벤처펀드 결성액과 신규 투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을 정도로 활황이었다는 점, 두 번째는 투자 회수 기간이 도래한 자펀드에서 발생한 수익이 누적되면서 이제는 모태펀드 자체 회수금(수익금)만으로도 운용이 가능한 때가 됐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2005년 출범 초기 12억원에 불과했던 연도별 회수금은 2011년 1425억원으로 처음 1000억원대를 돌파하더니 지난해에는 2745억원을 기록했다. 올 9월 말 기준 회수금도 2821억원가량 된다. 실제 모태펀드 운용을 담당하는 한국벤처투자는 올해 중진계정 예산을 받지 못해 만기가 도래한 기존 펀드에서 회수한 돈을 신규 펀드 자금으로 썼다.

그러나 벤처업계는 이 같은 당국 판단에 물음표를 다는 기류가 강하다.

무엇보다 모태펀드를 제외하고는 창업 초기 기업들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할 정책자금이 마땅치 않다. 벤처캐피털 마중물 역할을 하는 자금은 크게 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성장사다리펀드) 2가지다. 그러나 성장사다리펀드와 모태펀드는 원천 자본의 성격부터가 다르다. 창업 3년 내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창업초기펀드’ 자금의 8할가량이 모태펀드의 자펀드들이다. 성장사다리펀드는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등 금융자본으로 이뤄졌다. 태생부터가 벤처투자의 리스크를 감당하기 힘든 구조다.

연 회수금 2000억원이 민간 역량만으로 신규 펀드를 조성하기에 적절한 규모인지도 시각이 갈린다. 중소기업청과 한국벤처투자는 기재부에 2000억원이 적절한 규모인지 재고해줄 것을 여러 경로로 요청했지만 기재부 측에서 번번이 이를 고사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특히 최근 2~3년 회수금이 늘어났던 데는 코스닥 활황으로 기업공개(IPO)가 워낙 증가했던 영향이 크다.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회수금이 쌓일 것으로 마냥 낙관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IPO로 가기 전 중간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세컨더리’ 시장은 아직 걸음마도 채 못 뗀 상태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연 회수금이 2000억원가량 된다고 해도 이를 전액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중진계정 출자 분야 가운데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창업 분야만 있는 게 아니라 지방, 여성, CRC(기업구조조정조합), M&A, 세컨더리 등 여러 분야가 있다. 궁극적으론 민간자금만으로도 벤처투자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정부 방향에는 백번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벤처 시장은 자금 회수 구조나 시장의 성숙도 등에서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벤처캐피털 임원은 “정부가 예산을 늘리던 시점에도 모태펀드 회수재원은 1500억원 안팎이 유지됐던 점을 감안하면, 기재부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투자금 회수와 고용 유발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모태펀드 특성상,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장기성과 사업 예산을 삭감하고 단기성과 위주로 편성하는 등 창조경제 색깔 지우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이 무성하다”고 털어놨다.

당장 벤처업계에서는 신규 벤처캐피털 설립이 움츠러드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국내 한 대형 창업투자회사에서 바이오 투자를 총괄한 임원 A씨는 최근 회사를 떠나 새 펀드를 꾸리려던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그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은 어느 정도 트랙레코드가 있는 벤처캐피털로만 자금을 집행하다 보니, 기관 자금 대부분이 일부 대형 벤처캐피털로만 쏠린다. 결국 갓 창업한 벤처캐피털들은 모태펀드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데, 규모가 작은 축에 드는 250억원짜리 펀드를 하나 만들더라도 운영이 쉽지 않다. 아무리 200억원대 자투리펀드라도 최소 인력이 3~4명은 필요한데, 성과보수는 고작 3~4억원가량밖에 안 된다. 초반엔 쥐어짜는 식으로 얼마 버티더라도 결국 못 버티고 소리 소문 없이 간판을 내리는 곳이 적잖다. 이런 마당에 모태펀드마저 자금 집행이 줄어든다면 누가 과감히 벤처투자에 뛰어들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벤처캐피털의 투자가 절실한 스타트업도 모태펀드 예산 삭감 이후 갈수록 투자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당장은 이미 집행된 자금으로 버티겠지만 신규 펀드 규모가 줄어든다면 2~3년 정도 시차를 두고 ‘투자절벽’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아직까지 한국 벤처 시장은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으로는 가야 할 길이 멀기에 회수 시장을 비롯한 제도적 보완을 서두르면서 정책 자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을 목적으로 창업 초기 기업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털 투자에는 일정 부분 정부 개입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정책 목표가 강한 초기 기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정부 벤처캐피털과 성장, 회수, 재기를 전문으로 하는 정부 벤처캐피털 등으로 영역을 세분화해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장기적으론 민간자금이 주도하는 구조로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하기에 중간 회수 시장을 비롯한 인프라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의 의견이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3호 (2016.11.16~11.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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