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리스크 테이커가 필요한 시점이다. 잠깐이라도 주변을 스쳐 지나간 이들을 다시 불러내 혁신적 미래를 준비할 순 없을까. 경제·사회적 조건이 갖춰진다면 사라진 리스크 테이커는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처럼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낡은 시스템을 유지하면 그들은 영영 모습을 감춰버릴지 모른다. 그들을 다시 불러내는 방법은 없을까? 위정현 콘텐츠경영연구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과 <기업을 혁신하는 스타트업 DNA>의 저자 최원식 마켓포럼 대표(린스타트업코리아 공동대표)와 그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1990년대 일본 # 미국 IT 혁신 #한국과 일본의 유사성

위정현():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은 90년대 중후반 일본과 비슷하다. 사회 심리적인 차원에서 그렇다. 그 당시 일본은 20년 장기 불황에 초기 단계였다. 그때 일본인들은 다시 경기가 올라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다렸다. 그 와중에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IT를 중심으로 산업 전반에 새로운 혁신의 물결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토목과 건설 사업에 돈을 쏟아부었다. 지금 우리와 굉장히 비슷하지 않은가? 지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시작됐는데 기업들은 앞이 안 보이니까 주저하고 있다. IT 중심 혁신 생태계는 망가져 있다. 사람들은 놀랍게도 ‘경기가 좋아질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어떻게든 될 거야’ 이런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가 어떤 액션을 취할까가 아니고 기대만 하고 있다. 90년대 일본과 굉장히 놀라운 유사성이 엿보인다.

#4차 산업혁명 #린스타트업 #디자인씽킹 #애자일 방법론

최원식(): 20세기 경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측하고 기획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프로덕트 이노베이션’, 제품을 좀 더 혁신적으로 개발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제품을 만드는 방식에서의 혁신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이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너무 불확실한 변수들이 많으니까 예측이 안 되는 거다. 4차 산업혁명의 경영혁신이 가능하려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 방법이 없다. 해답을 찾기 위해 하나의 학문, 하나의 주체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 결국은 융합이다. 그 방법론에 관한 키워드로는 린스타트업(Lean Startup), 디자인씽킹, 애자일 방법론을 들 수 있다. 혁신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다 하고 있는 방식들이다.

▲최원식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벤처 붐 #스타트업 붐 #새마을운동

: 예전에 IMF 위기가 끝나고 난 뒤에 대량 실직된 사람들이 벤처 붐을 조성하기도 했다. 정부가 주도했다기보다는 개인들이 절실한 상태에서 등장했던 흐름이다. 최근 스타트업 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벤처는 말 그대로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 리스크 테이킹을 하면서 나오는 것이다. 정부가 벤처에 대해 지원하되 너무 개입 안 하는 게 좋다고 본다. 벤처는 철저하게 민간의 영역으로 가야지, 관(官) 주도의 영역으로 가면 안 된다. 벤처와 새마을운동이 다른 건 이 부분이다. 새마을운동은 철저하게 관 주도였다. 벤처 육성이 새마을운동처럼 가면 안 된다.

#알파고 #트랜스포메이션 #4차 산업혁명

: 4차 산업혁명을 우린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을 둘 때 알았다. 다르게 생각하면 딥마인드는 벌써 몇 년 전에 알았다. 우리가 그만큼 뒤처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혁신 방법은 옛날 같이 어떤 한 명이 불도저식으로 밀어가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지금 해외에서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다시 말해 ‘변혁’이다. 변혁은 여기 있는 걸 완전히 던지고 저기로 가겠다는 의미다.

#트랜스포메이션 리더십 #빅뱅 혁신

최: 한국 사회에는 트랜스포메이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의 전형적인 리더는 저돌적인 돈키호테 리더십을 보여왔다. 혁신은 ‘점진적 혁신’이 있고, 그 다음 단계가 ‘파괴적 혁신이다. 전자는 자기가 가진 걸 바꿔서 개선하는 방식이다. 후자는 자기 것을 없애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식이다. 최근엔 빅뱅 혁신이라는 말도 있다. 점진적 혁신이라는 말로는 우버라든지 에어비앤비 같은 사례를 설명할 수가 없다. 관건은 제품 혁신에 따른 경쟁 우위 전략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혁신의 조건 #혁신 의지

: 혁신을 이야기하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혁신할 의지가 없다는 거다. ‘혁신’이라는 말 자체는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너 혁신 싫어?’라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거다. 우린 혁신이라는 단어가 가진 뉘앙스를 좋아하는 것뿐이다. 기업들이 말로는 혁신을 얘기하지만 그만큼 절박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혁신할 수 있는 경우는 2가지다. 하나는 굶어 죽을 때, 잡아먹힐 때다. 두 번째는 미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다. 후자는 정말 어렵다. 이걸 해내는 기업은 정말 위대한 기업이다. 이런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혁신 시스템 #캐치업 모델 #팔로워와 이노베이터

: 혁신은 기업 내부적으로 시스템화를 이뤄야 가능하다. 기업 DNA처럼 하나의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기업에 주어진 이제부터의 과제다. 우리나라는 발전 단계로 보면 팔로워에서 이노베이터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지금까지는 자원을 모아서 한 부분에 집중시키는 캐치업 모델이었다. 선두를 쫓아갈 때는 가능한 모델이다. 지금의 삼성전자를 보자. 따라 할 모델이 없다. 과거에는 모방할 상대가 있어서 ‘쟤랑 똑같이 해!’라는 주문이 가능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네가 직접 생각해봐’라고 말한다. 굉장히 어려운 단계다.

#실패를 대하는 자세 #생각의 혁신 #행동의 혁신

: 생각의 혁신과 행동의 혁신이라고 표현한다. ‘혁신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의 거리다’라는 말이 있다. 생각의 혁신은 우리나라가 외국 못지않게 잘한다. 행동의 혁신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자’라는 식의 개념이 있다 보니 잘 못한다. 이 과정에서 실패를 어떻게 용인하느냐도 중요하다. 우리의 실패와 외국에서 말하는 실패는 차이점이 있다. 외국에서는 사업을 시작할 때 KPI(핵심성과지표)를 먼저 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계속 할지 안 할지를 정하는 식이다. 우리는 끝까지 가야 한다.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 우리 기업들은 실패를 하면 해고 등의 방법으로 문책을 한다. 그러니 누구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다. 실패를 용인하는 시스템이나 방법론의 부재다. 실패를 무조건 용인해주는 게 아니라 헤징(Hedging)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위정현 교수.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팔로워와 이노베이터 #리스크 테이킹과 실패

: 팔로워에서 이노베이터로 간다는 것은 그만큼 실패가 많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걸 인정을 해야 한다. 팔로워는 모방을 하기 때문에, 그리 실패할 확률이 높지가 않다. 혁신 기업으로 가는 순간 대부분 실패한다. 인내해야 한다. 그리고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 도전한다는 것에 끊임없이 격려해주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할 굉장히 중요한 방향이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 실패자를 조직 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기업.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패스트 페일 #스마트 페일

최: 미국에서는 패스트 페일(Fast Fail), 스마트 페일(Smart Fail)이라는 용어가 있다. 실패를 해도 빠르고 똑똑하게 하자는 거다. 신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소 여건 제품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애플도 아이폰을 만들 때 그렇게 했다. 처음엔 종이에다가 콘셉트를 그려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실패에 대한 정의도 다시 내릴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면서 2만번 실패했다고 말한다. 사실 그들의 용어로는 2만번을 테스트했다든지 실험을 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분리시켜 잘했다, 못했다로 나눈다. 실패라는 용어의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실패 #사회적 안전망 #정부

: 사회적 안전망이 약한 것도 우리의 문제다. 한 번 실패하면 인생이 망가져버린다. 실리콘밸리에 가보면 실패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너도나도 다 실패해봤다고 얘기한다. 우리 사회는 실패한 사람들에 대해 너무 가혹하다. 벤처를 하다가 실패했을 때 가장 큰 것이 생활의 문제다. 생활이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정부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줄 수 있겠다. 하나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벤치마킹 #선택과 집중

: 한국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결국에는 두드려본다. 벤치마킹이라는 용어가 그렇다. 이런 게 머릿속에서 없어져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용어적으로도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선택이라는 게, 결국 기존에 있었던 것 중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 그중에서 베스트를 고르는 방식이다. 지금 세상은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내서 그쪽으로 가서 성공을 해야 한다. 지금 미국에 있는 성공한 거의 모든 회사가 그런 비즈니스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부 리스크 #국가 주도형 경제

: 현재 혁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건 그나마 기업들이다. 사회 시스템도 뒤떨어져 있고, 정부는 제일 뒤에 쫓아가고 있다. 기업의 현재 상태를 볼 때 굉장히 우려되는 것은 정부 리스크다. 기업의 경우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 대기업 재벌 중심 구조가 바뀔 필요가 있다. 과거 국가 주도형 경제 시스템이라든지, 대기업 주도라든지, 재벌 주도라든지. 이런 것들이 변화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노베이터가 되긴 어려울 거다.

 

#네이버 #카카오 #정부 #미래형 기업

: 네이버라든지 카카오는 굉장히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제조업 기업들은 내부에 혁신적인 문화나 조직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재벌 기업들은 캐치업 단계의 기업 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정경유착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우리 IT 기업은 정부는 간섭하지 말라고 하지, 도와달라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전통 재벌기업은 그러질 못한다. 결국엔 새로운 미래형 기업들로 사회가 재편될 필요가 있다.

#리스크 테이킹 #정부 #규제

: 정부는 후견인 내지는 제도적인 정비를 해주는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시점이 실속을 챙기고, 정리할 걸 정리하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이제 정리를 하면서 규제와 같은 부분도 정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핀테크 기술을 보면 외국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기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규제 때문에 산업 융성이 안 되지 않는가.

#정부 #R&D #역할분담

: 정부가 일단은 교육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겠다. 융합의 시대인데, 규제가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업종 간 규제들. 융합 중간중간에 장벽들이 너무나 많다. 정부는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나아가 도전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정부가 R&D 측면에서 기업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담당해주는 거다. 현재 정부 기관들은 상용화에 너무나 가까이 와 있다. 민간 영역과 경쟁하고 있는 거다. 그건 정부 연구기관이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해야 할 R&D, 민간이 해야 할 R&D가 나뉜다. 정부의 R&D는 장기적 관점이어야 한다. 민간의 R&D는 주로 단기적 개발에 치중하는 쪽이다. R과 D를 합쳐 R&D라고 하는데,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연구를 뜻하는 R은 정부가 담당하고, D는 민간이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겠다.

#한국형 혁신 리더 모델

: 우린 이미 그런 모델을 가지고 있다.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네이버 이해진 의장을 꼽을 수 있다. 김범수 의장의 리더십 모델은 굉장히 특이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리더십 모델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업을 지시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혁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식의 리더다. 임직원들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리더다. 이는 이해진 의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형태의 새로운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 정말로 요구되는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