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은 회사’에 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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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회사는 ‘인연’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모이는 곳”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가족 같은 회사.’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얼마나 멋진가.

임원들은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고 직속 상사는 형이나 언니처럼 나를 보살펴 줄 것 같다.

이런 회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회사에 다닌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업무 실수를 하거나 성과가 부진해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은 날이면 더욱더 가족 같은 회사를 떠올리게 된다.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어려움을 덜어 주는 상사가 한없이 그립다. 가족 같은 회사에서 형과 동생 관계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는 없을까.

직원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가끔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회사”라고 기업 문화를 자랑하는 경영자들을 만나게 된다. 직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에게 입사를 권유하는 경영자들도 있다.

이들은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가 높다고 자랑한다. 언론도 ‘가족 같은 회사’를 정과 인간미가 넘치는 곳이라고 묘사한다. 그런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는 따뜻한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많은 예비 경영인들이 훗날 기업가가 되면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가족 같은 회사는 경영자나 직원 모두가 동경한다. 그런데 정말 가족 같은 회사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을까. 직원들은 성과를 잘 내고 회사는 잘 성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실제 상황은 정반대다. 가족 같은 회사를 표방하는 회사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고 성과도 부진하다. 성장이 정체돼 시장에서 퇴출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과 회사는 목적과 운영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회사는 19세기 독일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가 제시한 ‘게젤샤프트’에서 출발한다. 구성원의 이익을 목적으로 계약으로 구성된 이익공동체라는 뜻이다. 반면 가족은 ‘게마인샤프트’다. 혈연이나 지연과 같은 인연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다.

◆경영 상황이 나쁠수록 ‘정’을 더 강조해

이렇게 회사와 가족은 본질적으로 다른 집단이다. 따라서 ‘회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사랑을 기반으로 서로에게 무한의 책임을 지고 있다면 회사 직원들은 이익을 토대로 각자 한정된 책임을 질 뿐이다. 따라서 이익과 책임의 균형이 깨지면 관계는 금방 무너진다.

가족 같은 회사에서 직원들은 경영자와 동료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관용을 베풀기를 기대한다. 이런 회사에서 경영진은 보상에 인색하지 않고 늘 솔선수범한다. 직원들이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당연히 직원들은 그런 경영진을 존경한다. 가족이라면 응당 기대할 만한 것들이다. 그러면 경영진이나 상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십중팔구 직원들이 업무를 자기 집안일처럼 생각하길 기대할 것이다. 집안일인데 소홀히 할 리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나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반대인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기업의 경영 상황이 나빠지면 기업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희생과 양보를 기대한다. 경영진은 경영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직원들이 고통을 분담하길 원한다. 보상이나 복리후생이 후퇴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업무에 더 많이 투입해 줄 것을 기대한다.

가족이니 그 정도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 셈이다. 반대로 직원들은 경영 상황이 나빠져도 회사가 보상이나 복리후생만큼은 최대한 유지해 주길 원한다. 경영진이 부모처럼 헌신하고 희생해 빨리 상황을 돌파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렇게 기업의 경영 상황이 악화하기 시작하면 기업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 관심을 쏟게 된다. 경영 상황이 나빠질수록 구성원들은 상대방이 이익을 양보하길 기대할 뿐 자신의 이익이 침해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다 이익이 훼손돼 책임과 균형이 흔들리면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고 회사는 직원들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헤어진다.

‘가족 같은 회사’는 대개 중소기업에서 듣는 말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직원들 사이의 유대감이 좋은 작은 회사에서나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건설·중공업 같은 제조업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제조 대기업들이 아직도 가족 같은 회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덩치는 한참 커졌지만 여전히 창업 초기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기업 내부에 남아 있었고 이것이 회사를 위기에 처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합당한 성과와 보상이 ‘계약관계’의 핵심

이미 침몰했거나 현재 침몰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 기업들은 책임과 권한을 냉정하게 따지는 합리적 문화가 내부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가족 경영이 이어지다 보니 경영자들은 적자가 늘어나는 데도 원망을 들을까봐 임직원을 내보내지 못했다. 직원들도 가족 같은 동료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해 다른 직장으로 옮기지 못했다.

경영 사정이 악화된 기업의 경영진과 직원들의 관계는 참 냉랭하다. 경영진은 회사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런 상황에서 고통 분담을 거부할 수 있느냐고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반대로 직원들은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상황이 나빠졌다고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느냐고 분개하고 있다. 서로에게서 경영 악화의 원인을 찾고 있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가족이라면 찾아보기 어려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이다.

가족과 기업은 목적과 운영 원리가 다르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들을 기업의 임직원들처럼 대할 수 없는 것처럼 기업의 구성원들도 부모나 형제처럼 대하면 안 된다. 집안일을 회사 업무처럼 처리할 수 없는 것처럼 회사 업무를 집안일 같이 다룰 수 없는 것이다.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지 않고 성과와 보상이 명확하지 않은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가족 같은 기업이 세계적 대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친구 사이의 동업이 대부분 깨지고 동창회나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기업이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친구나 친목 단체가 갖고 있는 특성이 합리적 기업 문화의 정착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링크트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의 얘기는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스타트업은 좋은 팀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회사를 가족처럼 운영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족이 아니라 스포츠 구단처럼 운영하라는 것이다.

그는 “퍼스트 무버는 처음 뛰어든 회사가 아니라 처음으로 규모를 키운 회사인데, 회사를 키우려면 가족 같이 운영하면 절대 안 된다”고 설명한다. 프로 구단이 우승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능한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처럼 회사도 좋은 성과를 내려면 ‘가족처럼’ 지낼 사람이 아니라 유능한 인재를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호프먼은 자신의 저서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서 회사는 가족이 될 수 없는 데도 경영자나 직원들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회사는 직원의 충성심을 요구하면서 그 대가인 고용 보장은 약속하지 않는다. 직원들도 애사심을 내세우지만 더 좋은 기회가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옮긴다.

그런데도 양쪽은 가족 같은 회사라는 거짓말로 관계를 맺고 있어 회사와 직원 모두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회사는 능력 있는 직원들을 잃게 되고 직원은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호프먼은 회사와 직원의 관계를 ‘동맹’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맹은 상호 이익이 있고 관계를 맺는 조건이 확실하며 독립적 주체일 때 관계가 성립된다.

호프먼의 주장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참 인간미가 없다. 하지만 회사와 직원 관계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가족 같은 회사라고 말하면서 무자비하게 직원을 해고하거나 직원의 미래에 무관심한 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가족 같은 회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다가 더 많은 연봉을 찾아 부나방처럼 날아간 직원들이 부지기수 아닌가.

따라서 회사는 성과를 위해 직원의 업무 능력이 필요하고 직원은 자신의 성취를 위해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터놓고 말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해야 가족 같다며 직원들에게 적은 연봉에 야근과 특근을 요구하거나 가족이라며 과도한 연봉 인상을 요구하다가 훌쩍 회사를 옮기는 약아빠진 행동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

◆직원들이 ‘일’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야

미국 온디맨드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의 선두 기업인 넷플릭스는 ‘우리는 스포츠 팀이지, 가족이 아니다(We’re a team, not a family)’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가족 같은 사적 관계가 아니라 공적 관계가 더 효율적이라고 믿고 지향한다는 것이다.

회사와 직원은 계약을 맺고 있지만 ‘이익공동체’로 이익을 공유한다. 이익은 단지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다. 회사는 직원에게 일을 주지만 그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할지는 전적으로 직원에게 달려 있다.

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단지 회사에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직원에게도 자부심·성취감·자신감이 생긴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좋은 업무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회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직원 개개인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 가족과 회사는 목적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운영 원리를 적용할 수 없다.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조금 퍽퍽하고 인간미가 부족할 수 있지만 직원들은 자신의 성과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기업은 직원들의 보상에 맞는 수준으로 업무를 맡겨야 한다.

특히 직원들은 가능하다면 성과와 보상, 권한과 책임이 분명한 기업에서 일해야 한다. 그래야 만족도가 높아지고 개인적 성장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느냐가 아니다. 직원들이 업무를 통해 얻는 것이 스스로를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느냐 하는 점이다.

(일러스트 = 김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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