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글, 한국 기업이면 150세 도전 꿈 못꾼다

손해용 2017. 9. 1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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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가로막는 거미줄 규제
노화·자율차·드론 등 혁신 연구
의료법·개인정보법에 막혔을 것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57곳
한국 오면 지금 모델로 사업 못해

구글은 인간의 수명을 150세까지 끌어올리는 도전에 나섰다. 자회사 ‘칼리코’를 통해 100만 명 이상의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 노화의 비밀을 플고 난치병 치료법을 찾고 있다. 또 다른 자회사 ‘베릴리’와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도 이를 거들고 있다. 암세포를 탐색하는 나노 로봇, 원격 진료가 가능한 의료 모바일 앱 개발도 진행 중이다.

이런 활동 덕분에 '혁신의 아이콘'이 된 구글이 만약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창업했다면? 중앙일보가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해 한국과 미국의 규제 현황을 조사한 결과, 구글이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거나 상당한 제약을 받았을 것으로 분석됐다. 구글의 연구는 유전자 연구를 제한하는 ‘생명윤리법’과 개인 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처리하지 못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는 데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진료는 의료법ㆍ약사법에 가로막혀 불가능하다.

‘프로젝트 룬’을 통해 세계 오지에 인터넷을 보급하겠다는 구글의 야심 찬 계획도 한국에선 실현하기 힘들다. 통신 기능을 갖춘 거대한 열기구를 하늘에 띄워 무선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항공안전법에 따라 안전성 인증, 조정자 증명, 비행승인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드론으로 음식ㆍ물건을 배달하는 ‘프로젝트 윙’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본체가 12㎏을 초과하는 드론은 지방항공청에 신고해야 하고, 전체 중량이 25㎏을 넘으면 교통안전공단에서 별도 인증을 받아야 한다. 야간에는 드론 비행이 불가능하다.

구글은 또 고객의 서비스 이용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발굴하고 있다. 자회사 네스트랩을 통해 사물인터넷(IoT)과 웨어러블ㆍ가전을 결합한 스마트홈 사업을 추진하는 게 한 예다. 카메라에 비친 영상과 위치정보, 각종 데이타를 결합시켜 증강현실을 표시해 주는 ‘구글 글래스 프로젝트’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의 생활과 직결된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개인정보보호법ㆍ정보통신망법 등으로 개인 정보 활용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구글의 ‘자율주행차’ 기술은 어떤 자동차 기업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도 뒤늦게 관련 규제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차량 기술은 산업부 ▶소프트웨어는 과기정통부 ▶도로운행은 국토부 ▶시범 운영은 경찰청 등으로 규제 권한이 나뉘어 있다. 기술개발 이후 각 부처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집계한 한국의 규제 경쟁력 순위는 지난해 105위(총 138개국 중)로 하위권이다. 2009년 98위에서 되레 뒷걸음질 쳤다. 반면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대대적으로 규제개혁을 실시하면서 2009년 86위에서 지난해 25위로 순위가 껑충 뛰었다. 미국은 29위, 일본은 54위다.

한국, 글로벌 규제 경쟁력 순위 뒷걸음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의 틀 바꿔야”

세계적으로 첨단 정보기술(IT)을 이용한 ‘신(新)산업 창출’ 경쟁이 치열한데, 한국만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업은 한국에서 ‘일단 불법’으로 규정되는 일이 잦다"며 "국내 창업이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최근 네이버를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해 논란이 된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면 최고경영자(CEO)가 자칫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기준 자산규모가 약 188조원인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은 한국에 있다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분류된다. 알파벳의 자회사이자 구글의 비밀연구소인 ‘구글X’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개발해 유명세를 탄 스타트업 ‘키티호크’에 투자했다. 문제는 알파벳 CEO인 래리 페이지도 개인적으로 ‘키티호크’에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키티호크의 현재 CEO는 ‘구글X’를 만든 세바스찬 드룬이다. 부당한 지원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페이지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 받을 수도 있다. 또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ㆍ보험사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국내법상 알파벳은 벤처투자 금융회사인 ‘GV’와 ‘캐피탈G’를 자회사로 두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한경연의 분석이다.

한국이라면 탄생하지 못할 세계적인 기업은 구글 만이 아니다. 아산나눔재단의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대 차량 공유 업체 ‘우버’는 한국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는 공중위생관리법에 저촉된다. 중국 알리바바의 온라인 결제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은 각종 금융 관련법을 위반할 수 있다. 보고서는 “전 세계 상위 100개 글로벌 스타트업이 한국에 들어오면 13곳은 사업을 시작할 수 조차 없고, 44곳은 일부 사업 조건을 변경해야 규제를 통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현재 사업모델로 한국에서 사업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43곳에 불과하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장)는 "지금과 같은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에서는 법에서 허용한 것 외에는 금지되므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용능력이 떨어진다"며 "명시적으로 금지된 것외에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규제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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