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홈쇼핑은 2011년 5월 버즈니라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8억원을 투자했다. 버즈니는 인터넷에 있는 영화감상평을 모아 사용자들에게 보여주는 회사였다. 사내에서는 왜 그런 데 투자하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GS홈쇼핑, 스타트업에 1200억 투자한 까닭은
하지만 실무진은 소비자의 평가를 모으는 기술로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버즈니는 2년 뒤 GS홈쇼핑과 제휴해 ‘홈쇼핑모아’ 서비스를 내놨다. 모바일로 홈쇼핑 상품 편성과 여러 쇼핑몰의 상품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비스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결국 이 투자는 GS홈쇼핑의 사업 방향을 TV 중심에서 모바일로 옮겨가게 했다.

◆대기업, 혁신 아이디어 수혈

GS홈쇼핑이 소리 없이 큰돈을 벤처기업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 5년간 12개 스타트업에 투자한 돈만 440억원. 벤처펀드를 통한 투자 등 간접 투자까지 합치면 전체 투자 회사는 259개, 투자액은 1200억원을 넘어섰다. 사내에서는 ‘버즈니 효과’라고 한다.

버즈니 홈쇼핑모아의 지난해 거래액은 1114억원에 달했다. 2013년 2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4년여 만에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15년 대비 280% 급증했다. 2015년 GS홈쇼핑은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GS홈쇼핑은 미국과 일본에서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제휴해 혁신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미국 구글과 일본 닌텐도는 2015년 구글에서 분사한 게임회사 나이앤틱에 3000만달러(약 364억원)를 투자했다. 투자를 받은 나이앤틱은 1년여 만에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를 출시해 전 세계에 포켓몬 열풍을 불러왔다.

버즈니에 대한 투자 성공은 GS홈쇼핑의 사업 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정체 상태인 TV홈쇼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바일에서 발견하고 사업 방향을 틀었다. 그 결과 모바일 판매금액은 2015년 1조원을 넘어섰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전체 판매의 35%(1조3153억원)가 모바일에서 이뤄졌다”며 “다른 홈쇼핑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스타트업과 공생하는 GS홈쇼핑

GS홈쇼핑의 스타트업 투자는 단순히 차익을 얻기 위한 투자와는 다르다. 벤처기업으로부터 혁신의 계기를 찾고, GS가 갖고 있는 노하우를 전하는 데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GS 관계자는 “단순히 투자금을 회수하는 벤처캐피털(VC) 방식이 아니라 스타트업에 대기업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컴퍼니벤처캐피털(CVC)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비디오 스트리밍 회사 ODK에 투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GS홈쇼핑은 이 회사와 함께 한류 콘텐츠로 북중미 홈쇼핑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GS홈쇼핑은 이 사업이 성공하면 그동안 그 나라의 방송 플랫폼 사업자와 합작 형태로 진출하던 홈쇼핑 사업을 비디오 스트리밍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S홈쇼핑은 이를 위해 마케팅, 재무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을 만들어 스타트업에 부족한 역량을 채워주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는 팀에 사무공간을 제공하고 사업화를 돕는 EIR(entrepreneur in residence)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면 GS홈쇼핑이 지원한 금액을 지분으로 전환해 스타트업 경영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이런 형태의 투자에 대해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산업화 초기 기업을 일군 1세대와 달리 사업을 이어받은 세대들은 스타트업과 협업하며 시장 변화를 읽어 나간다”며 “한국 대기업도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면서 성장 동력을 찾는 혁신이 시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