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국내를 대표하는 ICT 기업이자 벤처신화의 정점이다. 많은 기업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혹은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존재해 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네이버는 포털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정보의 바다인 웹사이트의 가치가 상승하자 관문의 역할을 수행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바 있다. 드넓은 대양으로 나서는 항해자들을 위한 항구의 역할을 맡았다는 뜻이다. Navigate(항해하다)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네이버라는 사명에는 이러한 철학이 잘 스며들어 있다. 물론 대양으로 향하는 항해자들에게 편리하고 익숙한 워터파크를 제공하는 개념이 더욱 강렬했지만.

하지만 구글이 알파벳으로 성장하며 드론과 자율주행차,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모바일 시장까지 장악했던 확장적 행보를 보여주는 등, 시대는 또 한 번 변하고 있다. 이제 인터넷은 모바일로, 모바일은 초연결의 시대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서 네이버도 변신을 시작했다. 2017년의 네이버는, 2016년의 네이버와 다를 것이다.

기술 플랫폼 기업의 중심

네이버는 지난 11월 주요 비즈니스 파트너인 광고주와 스몰비즈니스 사업자들을 초대해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NAVER CONNECT 2017’을 개최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배어 있는 역사적인 자리였다. 네이버의 실질적 수장의 역할을 맡고 있던 김상헌 대표와 더불어 내년 2월 대표로 취임하는 한성숙 총괄 부사장이 함께 등장했기 때문이다.

김상헌 대표는 오프닝 세션을 통해 지난 7월 국내 SW기업 최초로 자회사인 라인이 도쿄와 뉴욕 증시에 동시 상장하고, 지난해 선보인 스노우와 브이라이브가 각각 8000만, 25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등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네이버가 기술과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내년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소회도 밝혔다. 대표로 재임하며 보람 있는 일도 많았지만 후회되는 일도 있다며, 네이버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감정이 복받치는 듯 기자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하던 김상헌 대표가 마이크를 내려놓자, 모두의 시선은 한성숙 대표 내정자에게 집중됐다. 올해 발표된 프로젝트 꽃을 강력하게 추진한 바 있는 한 내정자는 기조연설과 함께 스몰비즈니스의 강점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한 내정자에 따르면 네이버는 올해 목표했던 신규 창업자 1만명을 이미 넘긴 상태며 연말에는 1만1000명의 신규 창업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1억원 이상의 연매출을 올린 쇼핑 분야 스몰비즈니스도 5500여명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의 가치도 강조됐다. 인공지능 대화시스템 (아미카)AMICA와 자율주행, 통번역 앱 파파고, 파파고의 기술이 적용된 브라우저 웨일(Whale), 3차원 정밀 실내 지도 제작 로봇M1등도 언급됐다. 한 내정자는 “로봇기술을 일상생활 속에서 선보인 것은 많은 기업들이 연구에 매달렸던 휴머노이드가 아닌 로봇청소기였던 것처럼, 또 인공신경망 기술을 친숙하게 만든 것은 간단한 쓰임새를 자랑하는 통번역 앱 파파고인 것처럼, 네이버가 추구하는 것도 첨단기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모두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중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기술 플랫폼 기업의 천명은 지난 10월 있었던 ‘데뷰 2016’ 행사에서 잘 설명된 바 있다. 네이버의 송창현 CTO는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 기반의 연구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 ‘Ambient Intelligence(생활환경지능)’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프로젝트 블루를 비롯해 대화 시스템 AMICA, 자율주행, 로보틱스, 통역 앱 파파고, 브라우저 웨일 등의 연구 상황을 공개했다. 네이버랩스를 통해 관련 동력을 키우는 한편, 별도의 법인화 작업을 통해 힘을 실어준다는 말도 나왔다. 새롭게 구성될 법인은 이사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 내년 초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송창현 CTO가 신설 법인의 대표이사와 네이버 CTO를 겸직한다.

다만 명확한 의미를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1월 간담회에서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술 플랫폼 기업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진짜 의미가 뭘까? 네이버의 이러한 전격전은 기술 기반, 즉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꾸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스스로를 생태계의 주인으로 규정한 상태에서 해당 기술을 다른 기술과 연결하거나,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대단위 전략을 짜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핵심기술이 필요하다. 즉 자사 중심의 생태계를 꾸리기 위해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며 다양한 외부 역량을 연결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모인 기술 기반의 생태계는 곧 네이버가 가진 기존의 서비스 기반 생태계와 맞물린다.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서비스 기반 생태계는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술 기반 생태계보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네이버는 서비스에 이어 플랫폼, 콘텐츠의 시너지를 넘어 생태계를 꾸리는 기술적 경쟁력을 더욱 극적으로 결합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 내정자의 능력이다. 한 내정자는 이공계열 출신 인사가 아니며, 말 그대로 서비스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무엇을 의미할까? 한 내정자의 히트작인 스몰비즈니스의 강점을 바탕으로 생태계 전략을 짜는 한편, 그 중심에 네이버랩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기술 기반 플랫폼 경쟁력이 덧대어지는 모델이 유력하다.

성과는 지금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아틱을 중심으로 네이버의 초연결 인프라는 더욱 확장되고 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콘텐츠적 성과로도 발현되고 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벤처스가 최근 콘텐츠 시장 육성을 위해 의기투합한 부분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500억원 규모의 신규 펀드(에스비넥스트미디어이노베이션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최근 기술 중심의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까지 전사적으로 노리기 시작한 네이버의 행보와, 오일머니와 연합해 4차 산업혁명의 관문을 노리는 소프트뱅크의 투자 전략에 시선이 집중된다. 결론적으로 이는 기술 플랫폼의 강점을 프로젝트 꽃에서 보여준 플랫폼 전략과 연결해 네이버 중심의 생태계를 더욱 확실하게 만드는 한편, 콘텐츠적 가치에 더욱 집중한다는 뜻이다.

미래에셋과의 협력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미래에셋과 미래 기술 산업 육성을 위한 100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네이버 신성장투자조합 제1호’를 결성한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양사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로봇, AR/VR, 자율주행, 헬스케어, 스마트홈 등 향후 성장성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한 우수 업체들을 적극 발굴, 육성해 신성장 산업을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이다. 네이버와 미래에셋의 1:1 매칭펀드로 각각 500억씩 투자하며 운용은 미래에셋이 맡는다. 네이버는 오디오 콘텐츠 300억, 동영상 콘텐츠 150억 등 국내 콘텐츠 및 기술 분야에 향후 5년간 5000억원을 투자해나갈 예정이다.

기술을 풀어낼 곳?

기술 기반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며, 생태계를 꾸릴 수 있는 기본적인 원동력을 확보한다면 그 결정적 배경은 어디가 될까? 당연히 글로벌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타도 구글’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유럽이다.

네이버와 라인은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과 유럽 금융전문가 앙투안 드레쉬(Antoine Dresch)가 설립한 Korelya Capital(코렐리아 캐피탈)의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에 출자 기업으로 참여한다. 플뢰르 펠르랭 대표는 중소기업·혁신·디지털 경제부장관, 문화부 장관 등 프랑스 정부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프렌치 테크로 대표되는 자국의 스타트업 육성을 주도한 인사이며 지난 8월 공직에서 사임하며 해외 기업의 프랑스 및 EU IT 기업에 대한 투자를 지원하는 회사 설립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미 라인 상장과 더불어 스노우를 전사적으로 키우는 상황에서 네이버를 ‘화수분’의 역할로 돌린 상태다. 이 지점에서 네이버의 숙원이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미국의 구글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의 형태로 끌고 가는 지점이 재미있다. 결정타는 이해진 의장이다. 내년 한 내정자 취임과 동시에 의장직에서 물러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 매진한다고 한다.

네이버가 최근 Korelya Capital과 함께 프랑스 하이엔드 음향 기술 스타트업 Devialet(드비알레)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한다고 밝힌 부분이 중요하다. 지난 9월 Korelya Capital의 ‘K-펀드 1’ 출자 발표에 따른 첫 투자이며 이번 투자는 네이버와 Korelya Capital뿐 아니라 폭스콘, 르노-닛산 등의 글로벌 기업, 안드로이드 OS의 창시자 앤디 루빈(Andy Rubin), 뮤지션 제이지(Jay-Z) 등의 개인투자자들이 참여, 총 1억유로를 투자했다는 후문이다. 기술 스타트업 드비알레는 2007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스피커 분야 전문 기술기업이다. 자체 개발한 신개념 증폭기술 ‘아날로그‧디지털 하이브리드(Analog Digital Hybrid·ADH)’, SAM(Speaker Active Matching) 등으로 Phantom과 같은 차별화된 소형기기로 하이엔드 급의 음질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해 주한영국문화원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는 한편, 영국의 예술과 문화 산업을 한국에 소개하고 양국의 역량 있는 크리에이터 육성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네이버가 보유한 네이버 캐스트 및 TV 캐스트 등을 통해 내셔널 시어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같은 극단의 공연 실황 영상 및 영국 영화에 대한 방대한 정보는 물론, 음식·여행·스포츠 등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다. 최근 네이버가 반 구글 전선의 선봉에 선 유럽, 특히 프랑스와 협력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천명하는 상태에서 해당 전략의 최초 시발점도 프랑스의 콘텐츠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이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과 플레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통신부 장관, 그리고 네이버의 김상헌 대표가 한국에서 만났으며, 당시 네이버는 ‘프랑스의 해’ 행사를 포함해 프랑스의 문화, 라이프스타일, 경제, 교육, 언어, 관광 등의 다양한 정보를 동영상 서비스 ‘네이버TV캐스트’를 통해 제공하고 ‘네이버뮤직’, ‘N스토어’ 등의 여러 플랫폼들을 통해서도 프랑스 뮤지션과 아티스트, 영화, TV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스타트업 교류 및 협력에도 방점을 찍었다.

결국 네이버와 프랑스의 만남은 반 구글 전선의 핵심에 선 유럽, 특히 유럽 문화권력의 중심인 프랑스와 손을 잡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으로 풀이된다.

플랫폼이 겹치면 생태계가 된다

네이버는 기술 기반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며, 그 운용방식을 스몰비즈니스적 차원에서 관리할 개연성이 높다.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객체들을 빨아들여 거대한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기술의 확보가 중요하다. 네이버랩스의 활약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러한 역량은 모이고 모여 글로벌의 화두로 발현될 전망이다. 이해진 의장이 반 구글 정서를 타고 유럽과 유대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라인의 상장을 통해 확인된 네이버의 능력을 자유자재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 영국과의 협력에서 알 수 있듯이 네이버는 유럽과 손을 잡으며 막강한 서비스, 플랫폼 노하우를 내세워 각자의 시장을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나설 개연성이 높다.

서비스 기반의 기업이 기술 기반 플랫폼 기업을 타진하는 실험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2017년의 네이버가, 2016년의 네이버와 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