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요란한 '빈수레 정책'..한국형 알파고 연구 시작도 못해

황순민 입력 2017. 3. 1. 18:04 수정 2017. 3. 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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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유일 AI 싱크탱크 지능정보硏 靑 개입설에 올예산 150억 전부 삭감
인재·자금 빨아들이는 中 발전속도 위협적..4차 산업혁명 뒤처질판

◆ AI 연구에 한국은 없다 / 갈길 먼 한국 AI 현주소 살펴보니 ◆

한국에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세기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AI) 열풍이 휩쓸고 간 지난해 10월. 정부가 주도하고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KT 네이버 한화생명 등 대기업 7개사가 각각 30억원을 투자해 만든 연구소 기업 형태의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이 판교테크노밸리에 설립됐다. 미국·중국을 따라잡고 세계적인 수준의 AI 연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민관 합동으로 만든 국내 유일의 AI 싱크탱크 격이었다. 하지만 이 연구원은 출범 4개월도 안돼 사실상 올스톱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와중에 미르·K스포츠재단처럼 청와대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올해엔 예산을 한 푼도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구원 초기 정착을 위해 매년 150억원씩 5년간 총 75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자금줄이 끊긴 연구원은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로 전락했다. 한 연구원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개입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 났지만 일단 낙인이 찍히자 정부와 기업 관심이 뚝 끊겼다"며 "정부마저 냄비처럼 끓었다 식었다 하는데 우수한 연구 결과가 나오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정권마다 오락가락하는 과학 분야 투자가 결국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좌우할 연구 결과와 인재 실종을 낳고 있다는 얘기다.

매일경제가 단독 입수한 '클래리베이트 AI 보고서'는 이같이 4차 산업의 핵심 분야인 AI에서 다른 논문에 인용된 횟수를 기준으로 최우수급인 '상위 0.1% 연구논문'이 실종된 한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10년간 발표된 AI 관련 SCI급 논문 중 인용 지수 기준 상위 0.1% 수준의 논문은 미국이 270건으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영국 95건, 중국 49건, 독일 48건, 일본이 29건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한국은 단 8건에 그쳐 미국 대비 30분의 1, 중국 대비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4차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 분야에서부터 이미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경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뒤처졌다는 얘기다.

우수급인 '상위 1% 논문'도 미국이 2365건으로 단연 1위를 차지했고, 중국은 647건으로 2위였다. 반면 한국은 116건에 그쳐 영국(654건), 독일(478건), 일본(219건) 등 선진국에 한참 밀렸다.

연구의 '질'뿐만 아니라 '양'도 초라한 수준이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AI 분야에서 SCI급 논문을 2만1300건 내놓았는데, 이는 전체의 3.2%로 세계 11위 수준에 머물렀다. 김진우 클래리베이트 한국지사장(인공지능 분야 컴퓨터공학 박사)은 "중국과 미국의 논문 규모가 비슷함을 고려한다면 중국이 아직 연구 영향력 면에서는 미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은 선진국과의 격차가 너무 커 영향력을 언급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예견됐던 일"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AI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준비해왔지만 한국은 이를 등한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 국립대 컴퓨터공학 전공 교수는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이 2000년대 초반부터 AI에서 연구의 축적을 이뤄온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알파고 쇼크' 이후에야 허둥지둥 준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나마도 '알파고 쇼크' 이후 AI산업 투자를 선언했던 정부와 학계 의지도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관련 산업들이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찬물'을 맞고 있어 앞날은 더 암울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 AI 연구원은 "연구자 몇 명이 몇 개 논문을 쓰는 것으로 인공지능 강국이 되겠다는 순진한 발상"이라며 "AI가 발전하려면 다른 전공 분야들과 융합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정권과 뉴스 관심도에 따라 우르르 돈이 몰려가는 한국 연구소 풍토에서 어떤 인재가 '뿌리'를 내려 연구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AI 분야에 꾸준히 대규모 투자를 유도해 온 중국의 약진은 위협적인 수준이다. SCI를 포함한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에 등재된 AI 논문이 중국은 9만9737건으로 9만7789건을 기록한 미국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렸다. 3위는 2만7288건의 연구실적을 기록한 독일이 차지했고, 영국 일본 인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박근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부장은 "컴퓨터공학 등에서 산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의 현주소는 4차 산업시대에 심각한 위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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