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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Aug 12. 2017

자유로움에는 전제가 있다

새벽녘, 어느 작은 조직과 함께한 자리에서

최근 어떤 작은 조직의 회식자리에 동석했다. 대표를 제외한 회사 전직원이 모인 이 자리는 이른 저녁부터 술집이 마감하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화두는 '조직문화'다. 특별한 사회 경력은 없었지만, 각각의 재능을 가진 이들이 그 조직에 합류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그 조직은 자유로운 문화를 자랑한다. 자율출퇴근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무실에서 잠을 자든, 술을 먹든, 고양이를 키우든,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 그런 문화다.


물론 자유로움에는 전제가 있다. 그 전제는 '책임'이다. 책임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 신뢰에는 금이가며, 자유로움 또한 함께 무너진다.


그 조직은 무너졌다. 철저히 무너졌다. 책임은 지켜지지 않았고, 신뢰에는 금이 갔다. 금이간 신뢰의 사이에는 '권위'라는 것이 나타나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아있는 시체와 같았다. 자신감을 잃었다.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동력을 잃었다. 자괴감에 빠졌다. 눈치를 봤고, 굳이 누군가가 무엇인가 시키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 선임은 그 조직의 자유로운 문화를 소중히하고 자랑스러워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유로운 문화가 무너지자 처음에는 누군가를 원망했다고 한다. 책임을 지키지 않은 사람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고 한다. 조직이 준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임'이었다. 조직원들은 멍청한 것도, 게으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의욕을 가지고 무엇인가 개선하고 싶었던 이들이었다. 책임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책임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자유로움에는 또 다른 전제가 있다. 어찌보면 이것은 '책임'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책임을 지킬 수 있는 조직원'이다.


조직은 그 전제를 만들기 위해 애초에 자유롭게 냅둬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뽑거나, 그것이 안된다면 뽑아놓은 조직원들이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이끌고, 만들어줘야 했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무책임한 방치다.


방치가 지속된 조직은 그저 '시체양성소'가 될 뿐이다. 조직원들은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며, 누군가는 '자유로움'을 줬는데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 조직원들을 질책한다. 조직원들은 자괴감에 빠지고, 스스로를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침몰한다. 조직도 함께 말이다.


이 조직은 조만간 큰 변화를 맞이한다고 한다. TF단위로 조직을 쪼개 그간 자신에 업무에만 집중했던 선임들이 책임을 가지고 팀을 이끈다고 한다. TF는 조직 성장을 위한 신사업을 기획하며, 사업별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인적자원을 조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배치한다고 한다.


물론 TF팀장 역할을 맡을 선임들에게 그것은 전혀 새로운 업무에 대한 도전이며, 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원래 하던 업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업무부담이 늘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새로 합류한 조직원들에게는 없는 몇 년간의 경험이 있다. 최소한 그 조직이 어떤 자원을 갖고 있고, 어떻게 그것을 활용해야 될지에 대한 '감'은 있다. 그런 것들을 새로 합류한 조직원들이 알려주고,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들고, 다시 원래 업무에 돌아가 집중하는 것이 TF팀장들의 역할이다.


새벽 3시. 길고 치열했던 이야기가 오고갔던 이태원. 조직원 중 한 명이 손을 내민다. 입사 1년도 채 안된 신입사원이다. 그의 손 위에 4년차, 3년차, 2년차 각기 다른 경력을 가진 직원들의 손이 포개진다. 갈라졌던 그들의 마음도 조금은 풀리지 않았을까.


그들은 각각의 생각을 안고 집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조직과 조직원의 더 큰 성장을 바라마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자유로움의 힘을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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