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이면도로.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과 꽤 거리가 있는 이 곳에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춰섰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남성의 뒤를 따라 건물에 들어서자 입구부터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질렀다.

문을 열어 마주한 장면은 다소 생소했다. 손님을 맞는 식당 직원은 물론 식탁이나 의자도 없었다. 18평 남짓한 공간은 3개의 작은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고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은 셰프들이 각각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배달음식 주문 앱(응용프로그램)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공유 주방 '배민키친'은 지난 9월 문을 열었다. 현재 이태원 맛집으로 유명한 레프트코스트 아티잔, 라이너스바베큐, 지노스 뉴욕피자 등 3개 식당이 공간을 조금씩 나눠 사용하고 있다.

역삼동 근처에서 이용자가 배달의민족 앱으로 배민키친 이들 식당의 음식을 주문하면 배민키친에 파견된 셰프들이 각 본점과 똑같은 재료,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든다. 완성된 음식은 우아한형제들의 맛집 배달대행 서비스인 '배민라이더스'를 통해 배달된다.

배민키친을 통해 강남 진출의 꿈을 이뤘다는 안젤라신 레프트코스트 아티잔 대표(35)는 "강남에 직접 분점을 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적은 비용이 들었다"며 만족감을 표현했다.

윤영은 우아한형제들 배민키친담당 주임(29)은 "궁극적으로는 서울 맛집을 부산에서, 부산 맛집을 서울에서 배달 시켜먹는 게 배민키친이 그리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주방을 둘러보다 배민키친 1호점을 함께 열게 된 이들의 얘기가 더 듣고 싶어졌다. 근처 카페로 이동해 공유 주방이라는 공간이 두 사람에게 갖는 의미를 들어봤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배민키친 내부. 레프트코스트 아티잔 셰프들이 음식을 요리해 포장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배민키친 내부. 레프트코스트 아티잔 셰프들이 음식을 요리해 포장하고 있다.
◆"이태원 맛집들 강남 가고 싶어도 못 가"

이태원 식당이 자리를 잡자 안젤라신 대표는 자연스럽게 분점을 고민하게 됐다. 후보지는 서울 강남과 부산이었다. 상권을 분석하고 부동산 시세를 알아볼 수록 분점의 꿈은 멀어져만 가는 듯했다. 강남의 목 좋은 곳은 권리금이나 보증금 등 초기 투자금이 생각보다 훨씬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즈음 이태원 맛집을 대상으로 배민키친 입점 업체를 찾고 있던 배달의민족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안젤라신 대표는 "배달의민족이 입점을 제안하고 다닐 때 이태원 식당가에서 관심이 높았다"며 "다들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해 강남이나 다른 지역에 분점을 내고 싶은데 비용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윤영은 우아한형제들 배민키친담당 주임(왼쪽)과 안젤라신 레프트코스트 아티잔 대표. 이들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장인의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윤영은 우아한형제들 배민키친담당 주임(왼쪽)과 안젤라신 레프트코스트 아티잔 대표. 이들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장인의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배민키친 입점 업체들은 처음 소정의 비용만 지불하고 이후 별도의 임대료 없이 개별 관리비만 부담한다. 분점을 낼 경우와 비교하면 인건비와 마케팅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다. 초기 투자 비용이 워낙 적기 때문에 성과에 따라 부담 없이 퇴점을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점주 입장에선 장점이다.

윤 주임은 "배민키친은 홀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식당보다 위치 선정시 접근성을 덜 고려해도 된다"며 "이면도로처럼 임대료가 덜 비싼 곳에 들어가 입점 업체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간을 빌려주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문을 연 지 2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초반 성과도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다. 현재 이용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메뉴 변경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단계다.

◆식당 홀 없이도 신규 고객 유치

공유 주방은 음식배달 앱 시장의 성장세와 맞물려 식음료·외식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신규 고객 유치에 식당 홀 운영이 더이상 필수가 아닌 상황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안젤라신 대표는 "미국 음식 배달 시장도 최근 2~3년간 IT 스타트업이 많이 진출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젤라신 대표는 "미국 음식 배달 시장도 최근 2~3년간 IT 스타트업이 많이 진출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젤라신 대표는 "최근엔 한국의 1인가구, 특히 '혼밥족' '혼술족'을 주요 고객층으로 주목하고 있다"며 "이태원에 식당 문을 연 3년전과 비교하면 용산 지역 안에서도 배달 주문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레프트코스트 아티잔은 용산구 일대에서 푸드플라이, 셔틀 등 배달대행 서비스를 이용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음식의 신선도나 비용 문제 때문에 배달 가능 지역이 한정돼 있어 배민키친 입점 전까지 사실상 강남 지역 배달은 어려웠다.

음식배달 앱 시장의 성장은 오프라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점주에게도 반가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배달 대행, 공유 주방 등으로 신규 고객과의 접점이 늘어난 데다 배달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잠재 고객도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그는 "배민키친과 같은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맥도날드 말고 수제 햄버거도 시켜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며 "최근 푸드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른 광화문에 배민키친 2호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배달의민족은 배민키친 1호점 운영 성과 등을 지켜보며 향후 다른 지역 개점과 입점 업체 확장 등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윤 주임은 "특정 지역 맛집이 다른 지역에 분점을 내지 않고도 고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게 배민키친의 목표"라며 "1호점 안착 후 자신감을 더 쌓은 다음에 2호점, 3호점 준비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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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