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규제로 시름

‘사전규제가 스타트업 짓누른다’ 국회 토론회

인터넷입력 :2017/01/10 18:35    수정: 2017/01/11 08:30

“정책이 마지막에 변경되기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에 부딪치게 된다. 부처 간 관할하는 곳이 복잡해 금융위원회만 가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방송통신위원회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예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맞지 않는 규제 때문에 스타트업들이 적기를 놓치고 있다.” -이정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법률지원단 간사(변호사)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마치 계약할 것처럼 해놓고 핵심 정보만 교묘히 빼내갔다. 그리고는 사업성이 없다고 거절하더라. 이로 인한 직간접적인 손해만 수십억이다. 내가 이러려고 대기업이랑 손잡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씨에스에이코리아 황성수 대표

“콜버스 사업을 위해 서울시를 찾아갔는데 이런저런 규정 때문에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 국토부를 통해 시행규칙을 수정했지만 결국 콜버스를 식물화 시켰다. 법적 근거 없는 자의적 판단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콜버스는 좌초 위기다.” -콜버스 박병종 대표

정부의 과도한 사전 규제와 대기업의 횡포 등으로 사업의 어려움을 겪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한자리에 모여 생생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또 이 자리에 모인 국회와 정부 관계자, 그리고 전문 변호사 등은 스타트업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해결책 모색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과도한 사전규제들이 스타트업들의 창업과 육성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1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는 ‘최순실 사태와 청년 스타트업의 명암, 사전규제가 스타트업 기업 짓누른다’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주최는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 바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법률지원단이 공동으로 맡았다.

■삼디몰, 3D프린터 제조사로 규정돼 고발당해

먼저 토론회에 참석한 3D 프린터 관련 창업을 한 김민규 삼디몰 대표는 산업통산자원부로부터 3D프린터를 제조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8월 고발당한 사연을 소개했다. 3D프린터를 제조하는 사업자로서 제품에 대한 안전 확인 신고가 필요한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삼디몰은 저렴한 가격에 3D 프린터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인증 받은 부품을 사용해 사용자가 직접 3D 프린터를 조립하는 플랫폼을 제공했다. 산업통산자원부가 해석한 3D프린터 제조사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삼디몰은 해당 사업을 위해 인증표준콜센터로부터 “고객이 직접 조립하는, 개인사용 목적의 제품이므로 안전 확인 신고가 필요없다”는 답변까지 들었지만 산업통산자원부의 판단은 달랐다.

김민규 대표는 “정부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스스로 구상하고 개발하는 사람을 뜻하는 메이커를 내년 초까지 100만 명 양성하겠다고 했다”면서 “이대로 법원 처벌을 받게 되면 불분명한 법규와 사전규제로 인해 100만 메이커가 아닌 100만 명의 피해자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콜버스, 기득권 반발로 사업 좌초 위기

박병종 콜버스 대표(가운데)가 스타트업 규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승객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태우는 라이드쉐어링 서비스인 콜버스의 박병종 대표도 정부의 지나친 규제에 쓴소리를 냈다.

콜버스는 택시조합의 강한 반발을 샀다. 심야시간대 승객들을 태우는 콜버스가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불법 서비스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해 초 한 중앙 일간지 1면에 콜버스는 불법 서비스라는 광고까지 게재하며 회사를 압박했다.

결국 택시조합은 서울시에 콜버스 단속을 의뢰했고 국토부 검토를 거쳐 조율안이 도출됐으나 기득권의 입김 탓에 콜버스의 손발은 꽁꽁 묶였다. 여론은 콜버스 편이었지만, 사실상 택시조합의 영향력이 정부에 더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여기에 콜버스는 지자체 규제 때문에 한정된 지역, 특정 시간대 이후에만 운행이 가능한 어려움까지 겪었다. 사용자들은 콜버스의 저렴한 비용과 효용성에 긍정적이 반응을 보였지만, 중앙 정부와 지자체 규제로 현재 콜버스는 생존 위기에 처한 상태다.

■씨에스에이코리아, 대기업 횡포에 눈물

토론자들이 스타트업들이 성장하는 단계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있는지 말하면서 과도한 사전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씨에스에이코리아 황성수 대표는 대기업의 횡포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황 대표는 한 국내 대표 통신사가 진행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사업성을 인정받았다. 해당 회사가 발간한 창조경제혁신센터 성공 사례집에 소개됐을 만큼 두 회사의 관계는 끈끈했다.

나아가 씨에스에이코리아는 해당 대기업의 관계사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아 계약 단계를 밟아갔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창조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 과정이 길게 지연되면서 씨에스에이코리아는 자사의 핵심정보가 빠져 나갔고, 여러 차례의 투자 기회를 읽으면서 직간접적인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창업 활성화 한다면서 규제하는 모순 해결돼야”

변재일 의원(가운데)은 정권이 바껴도 창업 지원에 대한 정부 정책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스타트업들의 고충에 대해 양경준 케이파트너스앤글로벌 대표는 창업 활성화 정책의 모순을 꼬집었다. 창업 활성화 정책이 법적으로 잘 돼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이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이 문제란 비판이었다.

양 대표는 “창업을 활성화 하겠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규제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규제가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그 효용을 국민들이 누리게 하고 사후에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환 변호사는 “스타트업들이 인허가라든지 사업자 등록 등을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위원회가 만들어지면 국가경쟁력도 제고될 것”이라며 “창업 진흥과 육성 정책이 흔들리지 않고 스타트업들을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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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산업진흥원 이태훈 투자지원팀장은 “스타트업이 시장에 들어오면 힘 있는 기득권이 이를 막기 위해 힘 있는 사람들에게 규제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구조가 문제”라면서 “중심을 고객에게 두고, 고객 입장에서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재일 의원은 “그동안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주요 정책이 사장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벤처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었다”며 “4차 산업혁명 경제 구조로 바뀌는 만큼 다음 정권에서도 이 같은 기조는 계속될 것이다. 기득권과의 싸움이 힘들겠지만 이런 기존 산업과 새로운 산업과의 갈등요소들을 사례별로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