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경제

수수료 빼고 인증서 없애고…금융거래 지각 흔들 블록체인의 세계

정지성 기자
입력 : 
2016-12-16 16:01:21
수정 : 
2016-12-20 09:20:26

글자크기 설정

# 직장인 A(34)씨는 미국 뉴욕에서 유학 중인 동생에게 용돈을 보내기 위해 스마트폰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간편송금 앱을 실행한 후 3000파운드를 송금했다. 일반적으로 해외 송금에는 2~3일 정도 걸리지만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송금하면 한 시간에 송금이 완료된다. 중계은행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송금 수수료도 기존 서비스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 주부 B(37)씨는 6살 자녀의 1만원 미만 병원비를 보장받는 유아 전용보험에 가입했다. 한 달에 2000원 정도만 납부하고 자녀가 다쳤을 때 간단한 진료비를 받을 수 있다. 블록체인 방식으로 인건비를 절감한 보험사가 비싼 유아보험이 부담스러운 부모를 위해 출시한 상품이다.



“블록체인은 향후 5년 안에 자본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돈 탭스콧 탭스콧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인터넷이 지난 30~40년을 지배해온 것처럼 앞으로는 블록체인 혁명이 30년 이상 지배할 것”이라며 “차세대 핵심 기술로 모든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지난 10월 매일경제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지식포럼에서 ‘디지털만능장부 블록체인의 미래’세션에 청중들이 몰려 차세대 핵심 핀테크 서비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사진설명
▶금융거래 변혁 가져올 차세대 핵심기술

모든 거래자에 동일한 정보 공유

‘블록체인(block chain)’은 금융과 정보기술(IT)의 결합을 뜻하는 핀테크 서비스 중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다. ‘공공거래장부’로도 불리는 블록체인은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같은 장부를 보관하고 기록해 나가는 분산형 데이터 운영 시스템이다. 새로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거래 정보의 집합체인 ‘블록(block)’이 만들어지고, 이 내용을 모든 참여자가 인정하면 블록이 기존 장부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면서 정보의 ‘사슬(chain)’이 형성되는 원리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블록체인 플랫폼인 ‘이더리움(Etherium)’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블록체인 시장의 성장성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이 상용화하고 신뢰가 쌓이면 미래의 모든 금융 거래가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금융뿐 아니라 저작권, 신분 확인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필수적인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의 원리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농사를 짓는 한 마을에서 매일 곡물 거래가 일어난다고 가정하자. 기존 금융거래 방식은 곡물 거래를 장부에 기록하는 기록관이 따로 있어서 곡물을 거래한 뒤 이 기록관에게 가서 거래 내역을 일일이 기록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때문에 기록관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몰래 장부에 잘못된 내용을 기록하는 방법(해킹)으로 곡물 거래를 숨기거나 곡물을 빼돌리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블록체인은 곡물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광장에 모여 거래 내역을 확인한 뒤 즉시 자신의 장부에 기록한다. 때문에 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제삼자(기록관)가 필요하지 않으며, 거래 내역을 속이려면 모든 마을사람의 장부를 훔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블록체인은 별도의 정보관리자가 없어도 거래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보관하기 때문에 거래·시간 비용이 크게 절약되며 해킹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금융업에 이어 제조업이나 부동산 거래 등 디지털 기록이 필요한 모든 분야로 적용이 확산되는 추세다.

해외송금과 크라우드 펀딩, 주식거래, 전자지불결제, 공인인증서를 대체하는 인증서비스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자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함으로 모든 정보를 중앙에서 관리하고 뿌려주는 서버 같은 중앙집중형 관리 시스템이 필요 없다. 블록체인은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PC에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에 한 PC를 해킹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거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숙박시설 분야의 에어비앤비, 택시의 우버, 핀테크의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출 등 공유경제가 갖는 가장 큰 한계점인 보안과 신뢰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셈이다.

또 블록체인이 금융거래에 적용되면 예탁결제원, 신용정보원 등 공인된 제3의 관리기관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각 은행이 모두 같은 거래 정보를 공유하고 기록하기 때문에 따로 중간관리자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수료 등 금융거래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서비스 처리 시간도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적으로 수수료는 거의 ‘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 IBM 블록체인 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제임스 윌리스 부사장은 “현재는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각자 장부를 기록하고 있다”며 “블록체인이 상용화되면 모든 기관이 같은 장부를 보관하게 되기 때문에 거래 정보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어 약 5000만달러의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설명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 주도권 경쟁 이미 시작

블록체인은 다양한 공공서비스에도 적용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정부 자산, 주택, 차량, 특허 등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거나 투표시스템을 블록체인으로 보장하면 위조문서를 이용한 사기 등이 불가능해지고 관리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또한 입찰 및 구매부서, 기관에서 이용되면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등 최근 각광받고 있는 모든 신기술의 해킹 리스크를 해결해주는 것이 블록체인 기술이다.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IBM은 지난해부터 12월 리눅스 재단과 함께 ‘하이퍼레저 프로젝트(Hyperledger Project)’를 추진하면서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상품들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표준화된 기술을 만들어 공유하는 개념이다. 쉽게 생각하면 휴대폰의 안드로이드(Android) 같은 블록체인 운영체제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미국(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유럽(바클레이스 은행), 일본, 호주, 캐나다 등 45개 은행들도 미국 블록체인 스타트업 R3와 제휴하여, 블록체인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는 컨소시엄인 ‘R3CEV’를 결성했다. 에스토니아에선 블록체인과 연계한 전자 시민권 발급 제도를 시행하고, 우크라이나에선 투표 관리 운영에 적용시키고 있다.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의 최대 사립대인 니코시아대학교는 최근 ‘가상화폐의 이해’라는 강좌를 끝까지 들은 137명의 학생들에게 블록체인을 이용해 수료증을 발급했다. 정보통신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의 위상이 무색할 정도로 작은 나라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공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는 블록체인 기반 앱 개발 초기단계

최근 금융권 중심 속속 도입추진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삼성전자와 LG CNS가 블랙체인 기반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진행 중이지만,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한 정부와 금융권은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블록체인 도입을 기피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블록체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지면서 최근에는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공동 플랫폼 구축을 발표하는 등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KEB하나은행이 지난 4월 국내 최초로 ‘R3CEV’에 가입했고, 신한은행도 지난 5월 말 가입했다. 국내 은행들끼리 공동으로 진행하는 첫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자금세탁 방지와 해외송금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거래소도 해외 증권거래소들과 마찬가지로 장외주식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시스템 도입에 나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말 드디어 주목할 만한 뉴스가 발표됐다. KB국민카드가 핀테크 업체 코인플러그와 손잡고 국내 금융사 중 최초로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을 상용화한 개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소식이다.

KB국민카드는 우선 자사 모바일 앱카드 사용자들의 개인인증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다. 현재는 사용자가 모바일 앱카드에 로그인할 때나 신용카드를 등록할 때 혹은 30만원 이상 결제할 때 공인인증서를 통해 추가 인증을 해야 한다.

하지만 KB국민카드는 공인인증서 대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간편인증’ 서비스를 추가해 이용자들이 추가 인증 방식을 선택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용자들이 간편인증 서비스를 선택하면 공인인증서처럼 유효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인증서를 발급 받을 필요가 없다. 비밀번호도 6자리로 단순화해 공인인증서(10자리)에 비해 사용이 간편하도록 했다. 개인인증 시스템 도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앞으로는 결제 등의 금융서비스를 사용할 때 꼭 필요한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게 된다. 금융고객들이 공인인증서를 발급 받고 매년 만기 때마다 이를 재발급 받는 불편함이 사라지게 되어 금융시장에 혁명적인 변화가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카드와 함께 블록체인 인증 시스템을 공동 개발한 코인플러그는 블록체인 전문 핀테크 기업으로 기업들을 위한 맞춤형 블록체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다양한 사이버 공격에 취약한 오래된 플랫폼”이라며 “여러 나라들이 블록체인을 중심으로 한 금융 플랫폼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국내서 먼저 레퍼런스를 만들어 아태 지역 진출을 위한 주도권을 잡아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도입 초기인 블록체인이 실생활에 완전히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거래기록을 검증할 때 모든 장부를 대조해야 하기 때문에 처리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지금 기술로는 1초에 수천 건이 발생하는 주식시장의 대량 거래를 감당하기 힘들다. 모든 거래 기록을 저장해야 하기 때문에 블록체인의 용량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한 번 블록체인 망에서 집행된 거래는 되돌릴 수 없고 책임자가 없어 오류가 발생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점 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블록체인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관련 법 제도 및 규제가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창기 블록체인OS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은 현재 불법은 아닌데 가이드라인이 없어 합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어중간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이 기술에 대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홍승필 성신여대 IT학부 교수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하라는 법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 상황”이라며 “일본은 지난 5월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는 법안을 마련했는데 우리는 아직 준비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환 한국 블록체인 커뮤니티 그룹 의장은 “블록체인은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아직 한국 정부와 기업은 그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투자도 적은 편”이라며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성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5호 (2016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