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직원에게서 나온다” 다시 부는 사내벤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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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2.07. 오후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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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사내벤처 바람]
삼성전자 출신 망고슬래브, 세계서 ‘극찬’…은행·공기업서도 속속 도입 중


(사진) 수원 삼성디지털시티 내 마련된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C-랩' 프로그램 전용 공간에서 사내벤처 소속 임직원들이 아이디어 구현을 위한 테스트 제품을 만들어 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1월 5~8일(현지 시간)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가전전시회 ‘CES 2017’에서 분야별 최고의 제품 35개에만 수여하는 ‘최고 혁신상’에 국내 벤처기업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곳은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프로그램 출신인 벤처기업 망고슬래브. 이 회사는 지난해 사내벤처에서 분사한 이후 6개월 만에 세계적 전시회에서 상을 거머쥐었다.

1990년대 NHN(현 네이버) 등의 성공으로 벤처 붐이 인 이후 이렇다 할 성공 신화가 없어 잠잠했던 국내 사내벤처가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다.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최근 IT업계는 물론 사내벤처 제도가 없었던 은행권과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관련 제도 도입이 한창이다. 저성장 시대의 돌파구로 사내벤처의 혁신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 기업들은 임직원의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분사 이후에도 본사의 네트워킹과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제공하거나 재입사 기회를 줌으로써 사내벤처 지원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2010년 이후 다시 부는 사내벤처 바람을 업계별로 조명했다.

◆[전자] 삼성전자 ‘C-랩’, 분사 기업만 20개

망고슬래브를 배출한 삼성전자의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Creative Lab)은 삼성전자가 2012년 말 창의적 조직 문화를 확산하고 임직원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도입했다.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선정된 프로젝트에 3~4명의 직원을 배치해 6개월에서 약 1년간 이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이 회사는 C-랩 프로젝트 중 외부에서 사업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프로젝트를 분사시킴으로써 독립 기업으로 키우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C-랩 소속 임직원은 직급이나 호칭, 근태 관리에 구애 받지 않고 보다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근무할 수 있다. 특히 ‘실패해도 괜찮다, 마음껏 도전하라’는 기조 아래 본인이 원하면 분사 이후에도 삼성전자에 재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까지 4년간 150여 개의 C-랩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이 중 분사한 기업만 총 20개다. 회사 측은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도전하는 스타트업 스타일의 연구 문화를 경험해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 현업에서도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확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의 사내벤처 '린스타트업' 프로그램에서 출시된 아웃도어 스포츠 전문 선케어 브랜드 '아웃런'. /아모레퍼시픽

◆[유통] 아모레퍼시픽 “2년간 매출·이익 안 본다…소속 복귀도 OK”

K-뷰티를 이끄는 아모레퍼시픽 또한 사내벤처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회사는 2015년 하반기부터 사내벤처를 육성하기 위해 ‘린 스타트업’ 체제를 가동했다. 직원 3~4명이 팀을 이뤄 ‘뷰티’ 관련 프로그램을 제안하면 심사를 통해 별도의 신사업 태스크포스(TF)팀으로 발령하는 구조다.

이들은 본사를 벗어나 별도의 사무 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고 최소 2년간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근무 평가에서도 우대를 받을 수 있고 목표 달성 시에는 금전적 보상도 취할 수 있다.

사업 실패 시에도 기존 소속으로 복귀를 보장해 심리적 부담감을 최소화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사내벤처 팀은 매출과 이익 중심에서 탈피한 것이 최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에는 결실도 이뤘다. 친환경 천연유래 화장품 브랜드인 ‘가온도담’과 아웃도어 스포츠 전문 선케어 브랜드 ‘아웃런’이 사내벤처를 통해 출시됐다. 회사는 현재 2개 팀을 신규 선발해 운영 중이다.

◆[IT] 네이버, ‘사내벤처 DNA’ 잇는다

벤처 붐을 이끈 IT업계는 사내벤처의 원조 격이다. 이 중 삼성SDS의 사내벤처로 출발해 오늘날 1조원대 연간 영업이익을 올리는 네이버는 국내 사내벤처의 성공 신화 1세대로 통한다.

이 역사를 쓴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현재도 ‘사내벤처 DNA’를 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사내 독립 기업인 ‘CIC(Company In Company)’를 통해 사내벤처 프로그램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비스가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별도 법인으로 분사해 소속 직원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조직 책임자에게 대표란 호칭과 권한을 부여해 조직 전체에 대한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 국내외에서 1800만 사용자를 확보한 웹툰·웹소설 조직이 2015년 2월 CIC의 첫 사례로 선정됐고 네이버는 이 팀을 올 상반기 내 별도 법인으로 분사할 계획이다.

현재 실시간 영상 서비스인 브이라이브(V Live), 스포츠·게임 조직 등이 CIC 이전 단계에서 운영되고 있고 향후 분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의장은 “네이버 안에서 다양한 모델이 성장해 이들의 디딤돌이 되는 회사로 변모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제2, 제3의 성공 신화를 다짐한 바 있다.

◆[금융] 신한은행, 업계 최초 사내벤처 시동

이러한 사내벤처 바람은 은행권도 예외는 아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0월 사내벤처 제도를 운영하며 은행 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간 은행업계에서 아이디어를 공모한 곳이 많았지만 별도의 내부 벤처 조직을 구성해 사업 추진의 전권을 부여한 사례는 신한은행이 처음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진정한 업무 혁신을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모집하는데 그치지 말고 실현까지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해당 직원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사내벤처 직원들은 자율 복장으로 자유로운 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고 독립적인 전용 사무실에서 간섭받지 않고 과제 추진에 몰입할 수 있다.

또 사내벤처 과제 추진과 관련된 외부 기관 교육·연수 참가, 국내외 다양한 혁신 기업 벤치마킹 탐방 등 직원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해당 직원이 프로젝트를 마친 후에는 전문성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유관 부서에 배치하는 등 경력 관리도 지원할 계획이다.

회사는 이 같은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걸맞은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신한은행이 사내벤처 TF팀을 통해 개발하고 있는 사업 모델은 ▷고객 수익률 연동형 투자 상품 ▷생활 밀착형 정보 제공 플랫폼 ▷기업 고객을 위한 공장 회수 지원 펀드 등 세 가지다.


(표) 운영상 연계성과 전략적 중요성에 따른 '벤처 전략'의 선택. /배종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실패’를 과정으로 삼아야

경영 전문가들은 최근 기업에 부는 사내벤처 바람을 크게 반기고 있다. 기업 내 혁신과 신규 동력을 위해선 사내벤처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가 정신을 연구하는 배종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사내벤처는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데 역점이 있다”며 “조직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노력의 일환으로서도 사내벤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배 교수는 “국내 대기업에서 사내벤처 제도가 시행됐다가 최고경영자(CEO)가 바뀌거나 경영 상황이 변화하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사내벤처 제도가 자리 잡기 위해선 그간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 이를 극복하는 전략적 방안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에서는 1990~2000년대 초기 IT 붐에 힘입어 대부분의 기업들이 우후죽순 사내벤처 제도를 도입했지만 벤처 붐이 꺼지면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이를 입증하듯이 제2 네이버와 같은 사내벤처의 성공 신화가 2000년대 이후 사라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최근의 사내벤처 조성 열기가 또다시 식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배 교수는 “국내 대기업은 주로 설비에 바탕을 둔 제품(하드웨어) 중심으로 성공해 왔기 때문에 새롭게 부상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사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검증되지 않은 불확실한 일을 추진하는 것에 불신도 상당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단기 성과 중심으로 평가하는 사내 시스템이 비교적 진척이 느린 사내벤처 사업을 실패로 여길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김예구 연구위원은 “사내벤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실패를 ‘혁신을 위해 필요한 정상적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다양한 시도를 통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빠르게 제안→평가→검증→사업화될 수 있는 조직 문화의 정착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 또한 “사내벤처가 기존 조직과 구조적·지리적으로 독립하고 기업 문화와 운영 방식 등이 달리 적용된다면 사내벤처가 기업에 고착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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