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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단독] 서울대 졸업생 대표 연설, 재학중 창업한 이진열 씨

황순민,양연호 기자
입력 : 
2017-02-23 17: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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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 창업가가 대표연설 맡는 것은 개교 이래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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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열 마이돌 대표
요즘 서울대학교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야성적 충동'이 사라졌다는 자조섞인 얘기가 자주 나온다. 서울대를 두고 '고시사관학교'라고 칭하는 것이 그런 예다.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고시'나 '공시'에 올인하고 있는 풍토를 빗댄 말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공개된 '서울대 학부생 진로의식 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창업을 희망한 학생은 3.4%에 불과했다. 반면 공무원, 의사, 법률인, 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겠다는 비율은 24.7%로 압도적이었다. 스스로 판을 짜는 '창업'은 미친 짓으로 취급받기 일쑤고 남이 짜놓은 판에서 '안락'만 쫓게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이해진(네이버 창업)-김범수(카카오 창업)-김택진(NC소프트 창업)으로 이어지는 서울대 창업계보는 끊긴 지가 오래됐다.

그러나 24일 열리는 서울대 졸업식의 풍경은 다소 다를 전망이다. 재학생 시절부터 '자신만의 일'을 하겠다며 괴짜를 자처한 청년 스타트업 대표가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선다. 재학생 창업가가 졸업생 대표 연설을 맡은 것은 서울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입학 후 9년만의 늦깍이 졸업을 앞두고 있는 종교학과 이진열 씨(29)가 그 주인공이다. 이씨가 2013년 창업한 '마이돌'은 한류스타들과 가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스마트폰 잠금화면 앱이다. 스마트폰을 켜면 잠금화면에서 공유나 송중기 같은 한류 스타와 가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서비스다. 지난 2013년 서비스 출시 이후 현재까지 13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며 '국민 빠순이 앱'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특히 전체 사용자의 90% 이상이 해외 사용자로 '문화 한류'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창업 이듬해인 2014년 컴퍼니케이와 본엔젤스로부터 투자금도 10억원 유치했다.

졸업을 하루 앞둔 23일 매일경제와 만난 이씨는 "깨지고, 실패하고, 성공해가면서 배웠던 과정이 정말 두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면서도 "단순히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더 좋은 등수를 받고자 하는 삶보다는 남들이 인정해주지는 않더라도 제가 결정한 '진짜 제 일'을 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씨도 처음부터 창업을 꿈꿨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종교학을 전공하고 복수전공으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한때 '인문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도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대학생들이 모여 앱서비스를 만드는 팀에 마케팅 팀원으로 합류했고 창업의 길을 걷게 됐다. 애초에 창업을 꿈꿔왔던 것은 아니었기에 기본적인 경영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비를 털어 월급을 줘가면서 회계를 공부했고,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마케팅을 배웠다. 이씨는 "학생의 신분으로 창업을 했기 때문에 경영 기초 지식 부족이 정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면서도 "하지만 그걸 학교에서 배웠다고 해서 더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첫출발은 '역발상'이었다. 그는 "'기존 잠금 화면 플랫폼들이 너도나도 광고를 중심으로 했던 것과 달리 양질의 콘텐츠를 스마트폰 첫 화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은 아이디어가 창업까지 이어진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마이돌은 잠금화면에서 스타가 '가상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기능만 있었다. 그러나 한류 팬들로부터 "가짜여도 좋으니 대화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때부터 '가상 대화'가 가능하도록 메시지 DB와 기술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대화'가 가능하도록 인공지능(AI) 서비스를 구현했다.

현재 45개 언어의 5억 개 이상 메시지 DB를 바탕으로 가상대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졸업식 연설에서도 두려움 없는 도전정신에 대해 역설할 계획이다. 이씨는 "창업이란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미지의 망망대해'"라고 말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인공 호수에서 아둥바둥 물장구를 쳐봤자 점점 호수는 '불안의 늪'으로 변해갈 뿐이다. 그런 틀 안에서 일등은 할 수 있을 지언정 일류는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자신과 같이 망망대해로 출항하는 '괴짜'가 서울대를 넘어 국내 대학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중·고등학교에선 입시에 쫓기고 대학 와선 학점과 스펙경쟁에 시달리는 한국 대학생들에게 창업이 얼마나 두렵고 불확실한지 잘 안다"면서도 "한편 고통 너머 가치는 도전해본 사람만이 안다"고 말했다. 한편 1946년 개교 이래 성적 우수자 위주로 졸업생 대표를 뽑아오던 서울대는 2012년부터 뇌성마비 장애인과 외국인, 여성 학군단(ROTC) 장교 등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학생들을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세우고 있다.

[황순민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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