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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파산행진 속 `중기·소상공인의 눈물`

입력 : 
2016-12-25 16:49:14
수정 : 
2016-12-26 13: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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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사업하다 수주조차 못하는 이런 불황은 처음입니다. 아픈 살을 도려내듯이 여러차례 인력조정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울산소재 중소기업인 풀메탈엔지니어링의 이 모 대표는 30년 경력의 업계 베테랑이지만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최근 폐업의 눈물을 삼겼다. 연매출 120억원이 넘는 석유화학 플랜트 기자재 업체로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에도 납품하는 곳이다. 하지만 수년째 이어진 조선 불황에 지난해부터 수주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자금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 대표는 “살아남기 위해 지난해부터 수차례의 인력감축과 해외수출을 시도했지만 내수침체와 수출난 때문에 수주절벽을 넘어설 수 없었다”고 고개를 떨궜다.

얼어붙은 내수시장과 불안한 정치상황에다 미국 금리인상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들이 불황의 늪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기업은 내수침체와 함께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중국에서 보호무역주의 강화현상까지 벌어지면서 파산과 법정관리 신청 기업이 사상 최고로 뛰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내년도 중소기업경기전망지수(SBHI)는 83.1로 3년 연속 하락세로 최저치로 추락했다. SBHI는 업체들의 경기전망 응답 내용을 점수화한 수치로 100을 밑돌면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한다는 의미다.

산업 현장에서는 풀메탈엔지니어링 같은 작은 기업 뿐아니라 매출 1000억원대 중견기업도 쓰러지는 실정이다.

경남에서 조선기자재 부품을 생산하던 중견 A사는 10년 전만해도 매출 1000억원대를 웃도는 잘나가던 1차 협력업체였다. 2007~2008년 조선호황기 때엔 밀려드는 주문에 공장을 밤낮없이 돌리기도 했으나 그때가 끝이었다. 2010년께 유럽 금융위기 여파와 조선 불황이 겹치면서 사세가 기울었다. 국내 조선 빅3에 공급했던 부품량은 매년 20~30%씩 급감했다. 직원들을 구조조정하고 제품 다양화 등 자구노력도 해봤다. 수십억원이 넘는 설비투자로 신제품 개발도 나섰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액은 전성기 때의 5분의 1에도 못미치는 200억원 이하로 떨어졌다. 적자에 빚덩이가 쌓이면서 대출이자 부담이 커진 A사는 결국 올해초 사업을 부문별로 청산·매각하고 말았다. A사 관계자는 “회사가 적자일 때도 과감하게 신규투자를 했지만 국내외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우리 노력만으로 되살아나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내수 위주의 독립 중소기업이나 신생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커피자판기를 유통하던 B사는 5년전 커피생산사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30억원 이상 투자해 공장을 건설하고 분말커피 생산에 들어갔다. 국내 커피시장이 성장세여서 분말커피와 커피자판기를 수직계열화하면 시너지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2012년께부터 원두커피와 드립커피 등 고급커피 시장만 팽창해 자판기시장은 오히려 위축됐다. 한때 50억원을 웃돌던 매출도 10억원대로 5분의 1토막이 났다. 지금은 대출이자도 못갚아 공장이 은행에 압류돼 사실상 청산절차를 밟는 중이다. B사 관계자는 “내수가 불안한데 미래 전망만으로 투자를 늘린 게 패인이었다”며 “공장건설 차입이 늘면서 자금사정에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창업이 힘든 기업파산·회생절차를 피해 대표자가 개인신용회복제에 기대어 파산에 들어간 업체까지 따지면 실제 파산기업은 훨씬 더 많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빅데이터 기반 입시·대학정보 서비스 스타트업인 클릭포유를 운영하다 3년만에 셔터를 내린 김 모 전 클릭포유 대표는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수요 부족에 홍보·마케팅 한계가 중첩돼 업체를 정리했다”며 “파산·청산 외에 개인신용회복제를 이용한 정리기업까지 고려하면 ‘쓰러진 기업’은 통계보다 훨씬 많다”고 귀띔했다.

소상공인 창업이 많은 음식점은 과다 경쟁에 따른 만성적인 적자업종인데 최근엔 김영란법 시행으로 상황이 더 악화했다. 서울 서대문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 모 사장(32)은 창업 2년만에 눈물의 폐업을 앞두고 있다. 김 사장은 “초기엔 대출이자를 갚아나갈 수 있었지만 김영란법 이후 더 버티기 어려워졌다”며 “이런 사정도 모르고 주변엔 고깃집이 2곳이나 또 개업해 황당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국내 고용의 약 88%를 책임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불황의 늪에 빠져들수록 한국경제는 고용과 가계·지역경제가 모두 위태로워진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하루하루 팍팍하게 살아가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게 불황 한파는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라며 “정치권이 초당적 협력을 통해 정치·경제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영태 기자 / 이영욱 기자 /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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