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시장에 부는 ‘로테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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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트렌드]

{미래엔 재판도 인공지능 기술력에 맡겨질 듯}

[유성민 IT 칼럼니스트]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월 15일 미국 대형 법무법인인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가 ‘로스(ROSS)’를 채용했다고 보도했다.

로스는 캐나다대 토론토 출신들이 개발한 법률 자문 솔루션으로, IBM의 인공지능 시스템인 ‘왓슨’에 기반 하고 있다. IBM 왓슨은 1997년 체스 챔피언을 이긴 인공지능 ‘딥블루’를 바탕으로 개발됐는데, 사람의 언어(일명 자연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말하듯이 질문하면 왓슨은 이를 이해하고 보유한 데이터를 분석해 해답을 제시한다.

로스는 왓슨과 마찬가지로 자연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법률 회사 직원들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법률적 질문을 하면 로스는 관련 법 조항과 과거 판례 및 2차 자료 등을 분석해 답변을 해준다. 특히 로스는 1초에 10억 장의 문서를 분석할 수 있어 여러 명의 변호사들이 수시간 동안 분석한 법률 자료보다 매우 뛰어나다.

◆ 로테크(Lawtech) 시대 열리나?

로스와 같은 법률 자문 솔루션 기술을 ‘로테크’라고 한다. 로테크는 법(Law)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로, 로스처럼 법률 분야에 빅 데이터, 머신 러닝, 인공지능과 같은 정보기술(IT)을 융합한 기술이다. 로스 외에도 현재 수많은 기업들이 로테크 산업에 진출해 있다.

로테크에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참여해 법률 시장에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버로(EverLaw)는 법률 회사들이 보유한 정보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자사의 변호사들이 쉽게 정보를 검색해 사건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한다.

에버로 창업자인 A. J. 샌커는 에버로 기술 도입 전후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4억5000만 달러 규모의 사건을 기준으로 했을 때 무려 700시간의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에버로는 안드레센 호로위츠로부터 8억1000만 달러의 펀드를 투자 받은 상태다. 호로위츠 투자회사는 실리콘밸리 신기술에만 투자하는 회사로, 포트폴리오에는 페이스북·트위터·세일즈포스와 같은 유명 IT 회사들도 포함돼 있다.

피스칼노트는 2013년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현재까지 100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 피스칼노트는 미국 연방정부와 각 주별 법률과 규제를 분석해 이들을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법률 변화에 민감한 기업 및 기관들에 앞으로의 입법 방향과 규제 변화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로스 같은 인공지능 기반 기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IT를 활용한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다. 로테크는 법률 자료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법조인들의 업무량을 줄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에 어렵게 느껴졌던 법률 분야의 정보를 일반인들도 쉽게 검색해 얻을 수 있게 함으로써 전문가 영역에서 대중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일을 로봇이 대신해 준다는 것은 고용주로서는 좋을 수 있다. 실수도 없을 것이고 비용도 인간에 비해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업원은 그렇지 않다. 벌이 수단을 빼앗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 가장 먼저 빼앗기는 직업은 무엇일까.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지만 전문 분야의 종사자 중에서는 아마도 법률인들이 가장 먼저 인공지능에 빼앗길 것이다. 법률 서비스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재판에서 논쟁을 벌일 때 판례를 기반으로 한다. 재판에서는 누가 얼마나 빠르게 본인에게 유리한 판례를 찾아내는지가 핵심이다.

법률 서비스는 미술·인문학과 같이 인간의 깊은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경영이나 정책처럼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지 않고 변수들의 리스크(혹은 변동성) 또한 적다. 단지 나라에서 규정된 법과 지식을 빠르게 파악해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 가령 누군가가 죄를 저질렀을 때 고려 사항은 법에 나와 있는 조항이면 된다.

법률 서비스가 일반인들에게 어려웠던 이유는 법에 명시된 수많은 조항들 때문이다. 법 조항이 복잡하게 돼 있고 외워야 할 부분이 많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법률 지식을 데이터화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법률 서비스의 전문성은 사라진다. 다시 말해 법률 지식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전문 법률인이 필요 없어지게 된다.

로테크는 IT를 활용해 누구나 법률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특히 로스는 인공지능이 더해져 말로 명령을 내리면 몇 초 내에 분석해 바로 답을 제시하기 때문에 전문 법률인이 없어도 될 수준이다.

IT가 법률 시장에 유입되면서 변호사의 고유 전문성이 사라지게 되고 전문직에서 일반직으로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로스쿨 도입과 변호사 공급이 초과된 상태에서 변호사의 전문성까지 사라지게 된다면 변호사들에게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물론 변호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로테크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변호사들의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수십 년 뒤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돼 있어 변호사가 아닌 로봇끼리 법적 논쟁을 벌일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변호사는 인공지능을 보조하는 역할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쯤이면 ‘선비 사(士)’가 아니라 ‘하인 사(使)’로 뜻이 변질될 수도 있다.

◆ 로테크가 바꿀 미래 법률 시장

타격을 입는 것은 변호사뿐만이 아니다. 로테크는 법률과 관련된 각종 문서와 특허 같은 법적 절차를 돕는 서비스도 제공하기 때문에 법률 시장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타격을 준다. 물론 이들을 고용하는 법률 회사도 타격을 입는 것은 마찬가지다.

로테크 스타트업들이 법률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법률 시장 규모는 그대로인데 법률 시장에 참여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법률 시장의 파이를 IT 스타트업들이 가져가게 되고 그만큼 법률 회사들은 파이를 잃을 수밖에 없다.

물론 변호사 대신 로테크가 제공한 솔루션을 사용하면 비용 효과의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법률 회사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가져간다.

볍률 서비스의 비용 산정 기준은 인건비와 시간이다. 로테크는 이러한 비용을 대폭 줄여주는데, 고객이 줄어든 만큼 비용을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고객으로서는 이득이다. 더욱이 법률 회사가 아닌 로테크 회사에 사건을 의뢰할 가능성도 높다. 법률 지식을 로테크 회사들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굳이 법률 회사에 의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로스쿨은 어떻게 될까. 변호사들은 현재도 힘들지만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로스쿨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게 되고 로스쿨을 운영하는 학교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로테크로 로스쿨의 수업 과정이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재판 승소 여부는 변호사가 아니라 로테크의 기술력에 달려 있는 셈이다. 로테크가 사건에 얼마나 논리적인 판례로 입증하느냐에 따라 재판 승소 여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로스쿨에서는 법률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로테크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과목들을 개설해 가르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 일부 로스쿨에서는 이러한 과목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조지타운 로스쿨, 서포크대 로스쿨 등 일부 로스쿨에서는 로테크 관련 과목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IT가 발달하면서 법률에 적용되는 로테크 기술이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수십 년 후에는 사람이 아닌 로봇이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로봇이 인간보다 더 똑똑하고 더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아직까지 로테크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법률 시장에 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몇 년 안에 로테크에 따른 큰 변화의 열풍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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